전국섬유노동조합 동일방직지부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당시 부녀부장이던 주길자가 회사 쪽의 지원을 받는 남자 후보들을 큰 표차로 물리치고 한국 최초의 여성지부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였다.
무기력한 어용노조와 가부장적 성차별이라는 이중적 굴레에 익숙해 있던 당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후보자를, 그것도 여성 후보를 내세워 당선시킨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이 중심이 된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한 중심이었던 동일방직노동조합이 겪어야 했던 시련과 고난은 시체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76년경부터 회사 측은 노골적인 노조 파괴활동을 벌이고 나섰던 것이다. 그 클라이맥스가 78년 2월 21일에 있었던 인분(人糞)세례사건이었다. 대의원 선거를 예정하고 있던 이날 아침 5시 30분경, 교대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조합원들이 회사정문에 들어서자, 노조사무실 안에서는 몽둥이로 집기들을 때려 부수는 소리와 함께 여성조합원들의 비명소리가 새벽하늘을 뒤흔들었다. 5~6명의 남성 근로자들은 방화수통에 분뇨를 담아 와서는 선거하러 들어오는 여성근로자들에게 닥치는 대로 뿌렸다. 그들은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장과 여자 기숙사에까지 난입하여 온통 분뇨통을 휘둘렀다.
이들 남자들은 기업주 측에서 동원한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폭력과 온갖 인간적인 모멸 속에서 나이어린 그들 여성근로자들이 끝까지 버티고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