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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코믹 풍자극의 진수-인생차압..
사회

코믹 풍자극의 진수-인생차압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2/18 00:00 수정 2005.02.18 00:00

◆ 영화로도 만들어진 걸작
 
국립극단의 창작극 <인생차압>이 양산무대에 올랐다. 이 연극은 한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이 1949년에 쓴 첫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을 <인생차압>으로 개명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 시대를 풍미한 걸작.

지난 1957년 국립극단 제5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되었던 <인생차압>의 양산 공연은 국립극단 예술감독 이윤택의 연출로 다듬어졌다.

양산문화예술회관이 올해 첫 기획초청 공연으로 마련한 이 연극을 보기 위한 시민들의 호응도 자못 뜨거워 19일 저녁 7시 양산문화예술회관의 객석은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관객들은 공연장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색다른 경험을 했다. 통상 공연 전 무대는 닫혀있게 마련이지만, 이날의 무대는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활짝 열려있었다. 

열린 무대에는 한 채의 한옥이 들어서 있고 댓돌이 있는 대청과 마당이 위 아래로 이분화 되어 있다. 대청에는 길쭉한 백자 하나와 큼직한 괘종시계가 보이지만, 전체적인 짜임새가 왠지 조잡해 보이는 것이 이 집 주인의 안목을 짐작케 한다. 

'이 집에서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려하는가?'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이 일게 했지만 곧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이 집이 일제 때는 악질 친일파였다가 해방정국에서는 친미파로 재빨리 변신한 이중생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서 오늘 잔치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축재(蓄財)의 귀재 이중생
 
연극이 시작되면서 무대는 잔치준비로 부산하다. 오늘날 온갖 부정과 비리로 신문지상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재벌이나 국회의원, 전직 대통령들도 '형님'으로 모셔야할 만큼 축재(蓄財)에 탁월한 귀재인 이중생.

이날의 잔치는 이중생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재물을 더 불리기 위해, 그리고 행여 장관자리나 하나 꿰차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기 위해 고관대작들을 초대한 잔치다.

하지만 잔치는 불발되고 만다. 마냥 잘 나갈 것만 같던 이중생이 외국인 랜돌프에게 사기를 당한 사실이 밝혀지고, 이중생의 각종 악질행각이 문제가 돼 입건됨으로써 연극은 초반부터 앞으로 닥칠 이중생의 몰락을 미리 점치게 한다.

이중생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깜냥으로 자신의 법률자문변호사와 짜고 유치한 위장자살 쇼를 꾸민다. 그러고는 자신의 사위 송달지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서를 쓰지만, 이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는 대신 사회사업에 희사하게끔 됨으로써 사실상 몰수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과 며느리도 이중생을 세상을 더럽히는 원흉으로 몰거나 유산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런 진퇴유곡 상황에서 이중생의 선택은 결국 자살.
 
◆병든 사회상의 풍자
 
이 작품은 해방과 더불어 마땅히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세력이 해방 후에도 새롭게 밀려드는 외세에 아첨해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여전히 떵떵거리는 병든 사회상을 가차 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진부한 주제이지만, 이날 무대는 극작가 오영진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이중생 역을 맡은 서희승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에 녹아들어 코믹 풍자극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무대였다.

연극에서 한 기회주의자는 끝내 몰락하고 말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은 기회주의자와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호가호위하는 현재진행형 상황이어서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의 심경이 썩 후련하지만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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