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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나무 이야기..
사회

[시가 있는 마을] 나무 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3/03 00:00 수정 2005.03.03 00:00

노(老)시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분의 화려한 이력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산을 좋아하고, 더 많은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고, 산 너머 산, 그 산에도 나무가 있고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시인께서는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인지 남은 날들을 머리 깎고 산에서나 살까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훌륭한 친구들이 있고, 잘 자란 자식들이 있는 노년이건만, 모든 것을 떠나 고요히 살고 싶다 하신다.

노시인께서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의무와 책임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황홀함을 맛볼 수 있는 자유로운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친구들은 사서 고생이라고들 말하고 있지만 노시인께서는 그렇게 살고 싶다 하신다.

나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먼지와 소음이 많은 세속에서의 삶을 떠나 산 속의 나무 한 그루처럼 살다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 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되더라도, 나무가 되기 전까지는, 결국 고독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성(儒城)에서 조치원(鳥致院)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修道僧)일까, 묵중(默重)하게 서 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公州)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過客)주) 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溫陽)으로 우회(迂廻)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重)한 그들의, 침울(沈鬱)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박목월, <나무> 전편 -
 

수도승처럼 묵중하게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의 침울과 고독.
평생을 수도하여도 벗어날 길 없는 침울과 고독.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침울과 고독이 삶의 본질이라면, 그 뿌리를 더 단단히 키워 제 각각의 빛나는 잎과 눈부신 꽃을 피워야 하는 것 또한 인생의 본질이 아닌가?

너무 쉽고 교훈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삶의 본질적인 침울만큼, 어쩔 수 없는 고독만큼 견고해져야 하는 것이 더욱 인간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시와 아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초저녁잠에 들 준비를 하는 한 그루 경건한 나무의 모습이 떠오른다.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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