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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역사에 대한 모독
사회

역사에 대한 모독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3/17 00:00 수정 2005.03.17 00:00
항일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사당에 일본군 장교 출신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지난 삼일절 아침 박정희 친필 현판을 떼어낸 양수철 뉴스서천 사장(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밝혔던 '거사'의 이유다. 이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렸다.

"충남도민의 가슴을 후련케 한 쾌거"(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라는 사람도 있었고, "용납될 수 없는 범법 행위"(조선일보 사설)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본 것은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보여준 반응이었다.
이 단체 간부들은 지난 3일 예산군을 방문해 "현판은 기념사업회가 박 전 대통령에게 글씨를 요청해 제작한 만큼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매헌(梅軒). 속세의 부귀와 명예에 얽매이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필자는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전에 '안중근의사 숭모회'라는 단체를 취재한 적이 있기에 그들의 의식구조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안중근 숭모하기'를 위해 모였다는 사람들의 '안중근 모욕하기'는 가히 목불인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지만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한 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우선 안중근 의사 숭모회의 초대와 3대 이사장을 잇따라 역임한 윤치영의 삶이 안중근 의사의 그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다시 말해 안 의사 가문이 '독립투사 가문'의 전형이라면, 윤치영 가문은 '친일파 가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승만 비서실장에서 1981년 전두환 국정자문위원까지 양지만 골라서 살아왔던 윤치영의 가계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윤치영의 큰형 윤치오와 둘째형 윤치소가 10년을 시차로 하여 차례로 총독부 중추원 찬의를 지냈으며, 셋째형 윤치성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구한국군 기병중장을 역임했다.

특히 둘째형 윤치소는 1937년 8월 당시 쌀 1백20가마에 해당하는 2천원을 국방 헌금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윤치영 스스로도 이동치영(伊東致暎)으로 창씨개명한 것은 물론이고 임전대책협의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했음은 물론이다.

친형제들만 친일행각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윤치영의 백부 윤웅렬은 1910년 일제로부터 남작의 직위와 매국공채 2만5천원을 받았다.
윤웅렬의 장남이자 윤치영의 사촌형인 윤치호도 1945년 조선 내 7인의 일본 귀족 중 한 명이 되었다.

바로 그 윤치호의 손녀가 현 조선일보 사장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신문이 친일파 청산 문제만 나오면 알레르기적 반응부터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항일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치욕의 금언이 있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기념하고 심사하는 '역사에 대한 모독'을 이제는 깨어있는 국민의 힘으로 중단시켜야 한다.

여의도 통신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주) 이 기사는 지난 3월 1일 현충사의 현판을 떼어내 구속된 뉴스서천 양수철 발행인을 돕기 위해 전국 "바른지역언론연대" 소속사에서 공동으로 개제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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