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이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던 1982년 3월18일 오후 2시,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염에 휩싸인 곳은 미국이 영사 업무를 겸하고 있는 중구 대청동의 미문화원이었다. 화재의 원인은 방화. 고신대학교 등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물어 미국문화원에다 불을 지른 것이었다. 이른바 혈맹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 공관에 불을 지른 이 사건은 온 나라 안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한 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건 발생 14일 만인 4월 1일 주모자 문부식과 김은숙이 자수하였고, 이어 경찰은 방화범 3명과 전단 살포범 3명, 의식화 학습을 같이 한 3명 등 11명을 검거하였다. 다음날 가톨릭 원주교육원에서 문부식과 김은숙 등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킨 김현장을 방화사건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하는 한편, 원주교육원장 최기식 신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인 은닉 혐의로 체포하였다. 이에 따라 문부식, 김현장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김은숙 등 여대생은 무기형을 선고받았으나 그 뒤 감형되었다. 이 사건은 그때까지 반미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던 한국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미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 이후 1980년대의 광주·대구 등 잇따른 문화원방화사건과 1985년 전국학생총연맹(전학련) 소속 대학생들에 의한 서울 정동 미국문화원농성사건 등이 일어남으로써 이 사건은 한국에서의 반미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간첩 등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조작하였으나, 2001년 2월 정부에 의하여 서울 정동 미국문화원농성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성격이 규정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성격 규정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