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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있는마을]나무와 새와 벌레와 구름처럼..
사회

[시가있는마을]나무와 새와 벌레와 구름처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3/17 00:00 수정 2005.03.17 00:00

어느 시인이 말씀하시길,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고. 찬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공을 쫓아 다니느라 바쁘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화단가를 맴도는 1학년들은 운동장을 온통 차지한 선배들이 부러운 듯한 표정이다.

시간이 좀 지나면 1학년들도 조금씩 운동장 귀퉁이를 얻어 공을 가지고 놀다가 언젠가는 운동장 한 가운데를 누비고 다닐 것이다.

운동장이나 식당에서 선배들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1학년으로서는 그것이 약간은 불만스럽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들이 1학년은 아닐 테니,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가듯이 이렇게 순서를 정해 놓으면 크게 보아서 손해가 될 일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우리의 방식이기도 하다.'고 일러 준다.
 
종례 시간에 우리반의 특수아인 석이를 도와 줄 친구를 정해야 한다고 하자 서로 주위를 살피며 웅성거린다.

석이는 정신지체아로 정규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은 보충학습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다 보니, 은근히 석이가 부럽다는 눈치다. 석이 앞에 앉은 체육부장이 자신이 석이를 도와주겠노라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석이를 잘 도와주긴 하지만, 같이 어울려 놀거나 친해지려는 마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이들 머리 속에는 석이에게서 도움을 받을 일이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교직 생활 16년째다. 참 딱한 일이지만, 남학생들 중에는 조용하고 약한 친구들을 건드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다음 종례 시간에 우정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해 제법 긴 종례를 해야겠다.

공자께서 붕우유신의 덕을 말씀하셨지만, 우정이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신의는 그 다음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구름은 봉우리에 둥둥 떠서
나무와 새와 벌레와 짐승들에게
비바람을 일러주고는
딴 봉우리에 갔다가도 다시 온다

샘은 돌 밑에서 솟아서
돌을 씻으며
졸졸 흐르다가도
돌 밑으로 도로 들어갔다가
다시 솟아서 졸졸 흐른다

이 이상의 말도 없고
이 이상의 사이도 없다
만물은 모두 이런 정에서 산다

-김광섭, <우정> 전문-
 
구름과 나무와 새와 벌레들이 제각각의 몫을 다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정을 키워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정이라고.

세상이 흉악한 이야기로 넘쳐나도, 오늘도 내일도 운동장에서 함성을 지르며 공을 쫓아 뛰고 있는 저 아이들은 아직 때 묻지 않았다.

열 일곱, 열 여덟, 얼마나 꽃다운 나이인가?

저 아이들이 아무 계산 없이, 우리가 사는 이유가 바로 '함께 있음'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함께 있음으로 해서 생겨나는 그 '정' 때문에 사는 것임을 알게 되는 때란 아득한 일인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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