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 시간에 우리반의 특수아인 석이를 도와 줄 친구를 정해야 한다고 하자 서로 주위를 살피며 웅성거린다. 석이는 정신지체아로 정규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은 보충학습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다 보니, 은근히 석이가 부럽다는 눈치다. 석이 앞에 앉은 체육부장이 자신이 석이를 도와주겠노라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석이를 잘 도와주긴 하지만, 같이 어울려 놀거나 친해지려는 마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이들 머리 속에는 석이에게서 도움을 받을 일이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교직 생활 16년째다. 참 딱한 일이지만, 남학생들 중에는 조용하고 약한 친구들을 건드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다음 종례 시간에 우정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해 제법 긴 종례를 해야겠다. 공자께서 붕우유신의 덕을 말씀하셨지만, 우정이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신의는 그 다음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구름은 봉우리에 둥둥 떠서
나무와 새와 벌레와 짐승들에게
비바람을 일러주고는
딴 봉우리에 갔다가도 다시 온다샘은 돌 밑에서 솟아서
돌을 씻으며
졸졸 흐르다가도
돌 밑으로 도로 들어갔다가
다시 솟아서 졸졸 흐른다이 이상의 말도 없고
이 이상의 사이도 없다
만물은 모두 이런 정에서 산다 -김광섭, <우정> 전문-
구름과 나무와 새와 벌레들이 제각각의 몫을 다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정을 키워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정이라고.세상이 흉악한 이야기로 넘쳐나도, 오늘도 내일도 운동장에서 함성을 지르며 공을 쫓아 뛰고 있는 저 아이들은 아직 때 묻지 않았다. 열 일곱, 열 여덟, 얼마나 꽃다운 나이인가? 저 아이들이 아무 계산 없이, 우리가 사는 이유가 바로 '함께 있음'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함께 있음으로 해서 생겨나는 그 '정' 때문에 사는 것임을 알게 되는 때란 아득한 일인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