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보내면 됩니까?"
"아이요. 내가 부업을 해야 지들 뭘 미겨(먹여) 핵교 보낼 낀데. 우리 영아가 좀 도와줘야 내가 일을 할 수 있어."
"무슨 부업인데요?"
"뭐 끼우는 긴데."
"그 일 해서 한 달에 얼마나 버세요."
"한 30만원 될라나."
"영아 아버지, 어머니는 뭐하는데요?"
"영아 이미(어머니)는 나갔고, 지 애비는 새장가 갔다던데, 통 연락도 안 돼. 나하고 영아가 일을 해야 할미나 지들 안 굶고 핵교 댕기지."차라리 없으면 아이들이 소년소녀 가장이 되거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도 되어 이런저런 도움이라도 받을 텐데 호적에 올라 있어 이도저도 못하게 자식들 삶에 방해만 되는 아버지가 더러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의 <엄마 걱정> 전편
"시 읽을 때 맨 먼저 뭘 하라 했죠?"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읽으라고 했어요."
"어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죠?"
"……."
"그런데 열무가 뭐예요?"
"해가 어떻게 시들어요?"
"엄마 생각이 아니고 왜 엄마 걱정이에요?"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와글와글 시끄럽다. 그래도 반응이 없는 반보다 이렇게 시끄러운 반이 훨씬 수업하기 좋고 나중에 보면 성적도 좋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어둡고 추운 골방에서 시장에 열무 팔러 간 엄마가 올 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엄마를 걱정하며 아버지도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떨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생각난다'는 대답을 이끌어 내는데 한참이 걸렸다."엄마는 뭐하려고 시장에 갔죠?"
"열무 팔려고요."
"시장에 엄마 가게가 있나요?"
"없어요."
"해는 기울거나 지지 '시들지'는 않는데 왜 시들었다고 했을까요?"
"……."
"처음에 나오는 '열무 삼십 단'하고 연결이 되죠? 해가 질 때쯤이면 엄마가 팔다 남은 열무도 시들 테니. 그리고 그 아래 '배추 잎 같은 발소리'에도 조응이 되어 배추 잎이 밭에서 살아 퍼들거리는 싱싱한 것이 아니라 시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시든 잎으로 떠오르게 해서 하루 종일 시장에서 시달려 힘없이 걸어오는 엄마의 지친 발걸음이 느껴지죠?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찬밥처럼 방에 담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찬밥'은 그냥 '차가운 밥', '식은 밥'이라는 뜻 외에 어떤 뜻이 있을까?"
"……."
"옛날에 따뜻한 밥은 아랫목에 이불로 싸서 묻어 두었지만 찬밥은 그렇게 보호하지 않았잖아.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호받지 못하는 그런 '찬밥'처럼 방에 담긴 것으로 표현했겠지?"
"네."
"안 오시네, 엄마 안 오시네, 안 들리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에서 엄마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네. 그리고 마지막 행의 '윗목'도 아랫목에 대립되는 말로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형상화하는 말이야.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 그때 엄마를 걱정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이제 절대적 빈곤은 거의 없어졌다 한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가 눈앞이다.기형도의 <엄마 걱정>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마, 아버지가 오히려 짐이 되는 집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다.
문학철 / 시인·보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