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앞뒤뜰에는 벗꽃, 개나리꽃, 동백꽃들이 흐드러지게 흘날리고, 불혹의 나이에도, 설레움으로 봄은 마음껏 다가온다. 어린시절 시골동네에는 살구꽃, 매실꽃, 진달래꽃 향래를 맡으며 친구들과 검게 그을린 얼굴로 진달래꽃을 따먹으면 유리알같은 우정을 싹튀워 가곤했다. 요즘 콘크리트바닥에서 크는 아이들은 이해할수 있을까, 아직도 마음속 깊은곳에서 되살아나곤한다. 초등학교 5학년때, 도시로 전학와서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다. 부모님이 몹시도 그리웠다. 기찻소리만 나면 베갯잎을 적시곤 했다. 지금도 그때 그일이 얼마나 서글프게 다가오는지 가슴이 미어쥔다. 청소년 상담실에서 좋은 부모되기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부끄럽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을까. 결혼해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많이 배우시지는 않으셨지만 참사랑해 주셨다. 특히 손주들 사랑이 지극했다. 지금도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주는것 같다. 요즘 아이 안낳는 세태에 네명이나 낳고 정말로 간큰 여자인것 같다. 그래도 주위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키우기가 더 힘든것 같다. 큰 딸애가 고등학교 1학년 자연 동생이 많다보니 엄마 손길이 많이 못미쳤다. (아빠는 애지중지 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섭섭해 했다. 네아이 모두 자기 스스로 잘 챙기고 아무 탈 없이 커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요즘같이 부모들이 극성스럽지 않았다. 그냥 물흐르듯 여러 형제들 틈에서 스스로 터득하고 성격이 형성되고 자립심과 협동심이 생겨서 어느한자리에 나름대로 몴을 열심히 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자녀를 한발뒤에 너무 강요되지 않는 조용히 믿음으로서 지켜주고 자기인생을 자기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 주고 한쪽가슴을 빌어 피곤하고 지칠때면 편히 쉴수 있는 그런 부모 자녀들 기쁨이 두배로 다가올수 있는 그런부모 어려움과 고통을 받아드릴수 있는 그런부모 스스로 건강에 신경쓰고 먼 훗날까지 자녀들 곁에 오래도록 머물수 있는 그런부모 그런 편안한 부모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