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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이....
사회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5/12 00:00 수정 2005.05.12 00:00
1980년 5월 18일

우리 겨레붙이들이 살아온 기나 긴 세월에 기막히고 한 맺힌 일이 셀 수 없도록 많지만,  그중에도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을 역사의 생채기다.

1979년의 12·12사태로 나라의 권력을 움켜잡은 전두환 등의 신군부는 국민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민주화를 외면하고 무시무시한 철권통치를 휘두른다.

그러자 1980년 봄부터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이에 당황한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인 18일 아침, 전남 도민들과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며 독기 오른 사악한 권력에 맞서 맹렬한 시민항쟁의 불을 댕겼다. 그로부터 광주는 뭍이 아닌 섬이 되어버렸다.

군부가 25,000명에 달하는 군을 투입해 무작스러운 진압작전을 벌인 27일 새벽까지 광주 밖의 사람들은 광주에서 어떤 처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몰랐다.

사망자 191명, 부상자 852명이라는 공식발표는 어디까지나 밝혀진 사실이었을 뿐,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무고한 뭇 생명을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치고 막을 내렸다.

적으로부터 제 나라 국민들을 온 몸으로 지켜야 할 군인들이 오히려 제 나라 국민들을 적으로 삼고 제 부모 형제들을 향해 마구 총칼을 휘두른 1980년 5월의 광주- 신군부가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이라고 규정한 이 끔찍한 일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아무런 말을 못하다가,

그 날의 가담자 중 한 명인 노태우의 6공화국이 들어선 1988년에야 '광주민주화운동'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고, 1995년 문민정부에 들어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비로소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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