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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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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사 속의 오늘] 1952년 5월 26일, 국회의원을 헌병대로…'부산정치파동'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5/31 00:00 수정 2005.05.31 00:00

 우리 정치사에 국회의원 48명이 탄 버스를 헌병사령부로 강제연행 해 이틀 동안 억류시킨 참으로 기막힌 사건도 다 있었다. 1952년 5월 26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날 아침, 국회 통근버스로 출근 중이던 국회의원들은 영문도 모르고 헌병사령부로 끌려갔다. 이들 의원들에게 가져다 붙인 구실은 국제 공산당의 자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제1공화국 시절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흔히 그랬듯, 이승만의 장기 집권 야욕에서 비롯되었다.
 지지기반이 약한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로는 다시 당선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해진 이승만은 대통령직선제와 상ㆍ하양원제를 골격으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는 당연히 이를 부결시켰다. 이에 독이 오른 이승만 권부는 장면 국무총리를 해임하고 장택상을 임명하여 그의 세력을 개헌지지 쪽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국민회ㆍ민족청년단ㆍ대한청년단 등의 단체와 백골단ㆍ땃벌떼 따위의 각종 폭력조직을 동원하여 관제 데모를 부추기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5월 25일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 일부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데 이어, 이승만 독재 비판에 앞장선 서민호 의원을 신변보호의 명목으로 헌병대로 끌고 갔다. 26일에는 정헌주ㆍ이석기ㆍ양병일ㆍ장홍염 등 내각책임제 주동의원들을 구속시키고 마침내 국회의원을 무더기로 헌병대로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 다음 곽상훈ㆍ서범석 등 핵심야당 의원들에게 국제공산주의와 결탁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이런 폭행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을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서 기립표결로 통과시켜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이승만은 그로부터 8년 후인 1960년의 4월혁명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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