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환타지>의 첫무대는 궁궐에서 국빈을 접대하기 위해 추어지던 궁중춤을 원형으로 하고 있는 '여명의 빛'. 화려한 빛을 자랑하는 한복과 나풀거리는 긴소매는 한국적인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코리아 환타지>는 사랑가, 진도강강술래, 학춤, 장고춤, 부포놀이, 오고무, 부채춤, 신라의 기상, 꽃 한송이, 북의 대합주 등 총 11개의 공연으로 꾸며져 있다.
몇 가지 공연들을 살펴보면,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학춤'이다. 학춤은 그 발상지가 우리 양산과 가까운 부산의 동래지역으로 동래지역은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지로 기방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동래지방 관속들과 기방을 출입하는 한량들이 조선시대 당시 외출복이었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허튼 춤을 추었는데, 흰색 도포와 검은 갓이 학 같다고 해서 '학춤'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공연을 보면 긴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펄쩍펄쩍 나르는 모양이 누가 학춤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만큼 우아한 날개짓을 하는 학의 형상 그대로다.
동래온천에 놀러온 관속들이 술 마시고 기녀들과 어울리며 몸을 들썩인 것이 결국엔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학춤을 낳았으니 좋게 말하면 풍류 속에 탄생한 예술이요, 과하게 말하면 한량들의 술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하지만 학을 연상시키는 그 자태가 아름다운 춤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이 날 공연 중 가장 눈에 띄는 공연을 꼽으라면 단연 북의 대합주 공연과 오고무.
<코리아 환타지>의 백미라 할 만큼 단연 돋보이는 보석 같은 공연이다. 한국무용이라 하면 정적이고 지리한 느낌만을 떠올리며 일단 그 분위기를 청승맞음으로 폄하해 버리는 오류, 그 오류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들이 바로 이 공연들이다. 화려하고 파워풀한 북소리와 현란한 비주얼, 끊임없이 움직여대는 몸놀림은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고 끝없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뜨거운 무대였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신라의 기상'.
신라의 화원과 화랑들이 검술을 익히는 장면을 표현한 창작품으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들의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힘, 그 용맹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남성적인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공연이다.
부채춤, 장고춤, 진도강강수월래 등이 우리가 익히 알아왔고 보아왔던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고 하면, '북의 대합주', '오고무', '신라의 기상'의 세 무대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많은 한(韓)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힘 속에서 철철 뿜어져 나오는 파워의 실체를 느끼고 또 확인할 수 있는 가슴 벅찬 무대였다.
본래 <코리아 환타지>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외국의 국빈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에서 올려지던 공연으로, 국립무용단이 세계 60여 개국 600여 차례의 해외 공연을 통해 한국춤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주옥같은 레퍼토리다.
또한 2002년 세계적인 무용가인 피나 바우쉬가 초청한 독일공연 당시 독일언론의 격찬을 받으며 7개 도시 전석 매진, 해외투어(일본, 러시아, 오세아니아) 6개국 8개 도시 전 지역에서 전석 매진의 성과를 올린 공연이기도 하다.
풍부한 레퍼토리와 다양한 세계무대 경험, 최고의 기량을 지닌 단원들로 무장한 국립무용단의 공연, <코리아 환타지>!
21일 양산문화예술회관 7시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그 자리에 왔었다는 것을 아마 5월 최고의 행운이라고 느끼며 공연장을 나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