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단어들을 조합하면 과연 어떤 영화가 탄생할까.
과거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제자(그것도 남학생)로 환생해서 돌아온다는 약간은 초현실적인 로맨틱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만들었던 김대승 감독이 위에 나열한 단어들을 모두 조합한 새로운 영화를 선보였다.
조선시대 연쇄살인극이라는 다소 낯선 타이틀을 내건 이 영화는 옛날 천주교도들이 잔인하게 처형당한 것에서 아이템을 얻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수사관 원규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된다.
섬에 도착한 첫 날,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으로 동요하는 마을 사람들은 7년 전, 역모를 꾀한 천주교도와 한패로 낙인찍혀 온 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객주의 원혼이 일으킨 저주라 여기며 점점 광기에 휩싸여간다.
불길한 섬에 고립 되어가는 원규 일행은 살인범의 자취를 찾지 못한 채 점점 광기어린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에 동요되고 만다. 게다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추리해나가던 원규 앞에 참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이어지고, 제지소 주인의 아들 인권은 흉흉한 마을 분위기를 강압적인 태도로 잡으며 원규와 끊임없이 대립하기만 한다.
여기에 참형 당한 강객주에게 은혜를 입었던 두호의 등장으로 원규는 점점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혈의 누'는 주연배우보다 탄탄한 관록의 연기를 선보인 조연배우들이 더 빛이 난 영화였다.
잠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객주 역의 천호진, 외지인인 차승원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박용우의 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효시, 육장, 도모지, 석형, 거열 이라는 조선시대의 5가지 형벌이 나오는 만큼 영화는 매우 잔인하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가족에게 이토록 잔인한 형벌을 내리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진실을 묻어버린다. 너무나 버거운 진실 앞에 주인공마저 입을 닫아 버리지만 우리는 이들을 욕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모습들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한 순간에 등을 돌려버리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배신감에 치를 떠는 강객주의 심정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한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영화는 잔인한 영상을 넘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면서 청렴한 관료가 재물과 권력욕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그려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