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주도에서 한 일 년 살았으면 좋겠어."
"제주도가 그리 좋았니?"
"응,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다만 바라보며 딩굴대다 잦아드는 노을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책을 빌려 와서 밤늦도록 읽다가 자고 일어나선 또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바다만 바라보며 딩굴대는 삶을 딱 일 년만 살았으면 좋겠어."
오늘은 딸애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아이들과 먼저 다녀온 딸애가 그렇게 좋다했던 제주도로 우리 아이들 데리고 수학여행을 왔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순박한 우리 아이들.
성산일출봉 오르는 잔디밭에 무리지은 꽃처럼 아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잔디밭 옆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며 우리 반 미소가 내려갈 때는 잔디밭을 굴러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성산포에서는 / 교장도 바다를 보고 /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 아내랑 나갔는데 / 냉큼 들어오지 않는다 /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 찾다가도 /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 성산포에서는 /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 바다를 본다 / 한 마리의 들쥐가 /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 잠깐 바다를 본다 /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 성산포에서는 /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 이생진의 <바다를 본다> 전문 -
몇 굽이 숨가쁘게 오르다 숨돌리며 내려보니 큰 걸음으로 훌쩍 내딛으면 풍덩 빠질 것 같은 성산포 포구 안 바닷물이 투명하게 속을 다 내보이고 있다.
쌍꺼풀진 눈이 예쁜 보혜가 이마의 땀을 씻으며 활짝 웃는다.
"제주도 와서 뭘 맘 속에 담았니?"
"투명하고 맑은 바다요."
"하하, 너무 좋은 것 맘 속에 담았구나. 수학여행이 다른 것 아니다. 아름답고 맑은 것 맘 속에 담아 나도 그렇게 아름답고 맑아지는 것이지. 나중에 화나고 답답한 일 당하면 수학여행 와서 본 성산포 맑은 바다를 맘 속에 담았던 일 떠올려 보렴. 그럼 맘이 다시 맑아지고 환해질 거야."
"ㅋㅋ~ 샘, 말씀이 시네요."
"하하, 샘이 시인인 것 몰랐니? 그런데 왜?"
"여기서도 충분히 좋네요. 샘은 정상까지 다녀오세요."
"그래, 여기서 보는 바다나 성산포 일대가 한눈에 굽어보이고 한라산이 건너보이는 전망도 충분히 좋구나. 그런데 정상에 올라가면 180도만이 아니라 360도 전부 다 볼 수 있단다. 정상 오르기 전에는 볼 수 없던 것 볼 수 있는 곳이 꼭대기야. 몇 미터 안 남았는데 정상까지 올라가자."
성산포에서는 / 관광으로 온 젊은 / 사원 하나가 / 만년필에 / 바닷물을 담고 있다
이생진의 <만년필> 전문
정상에 서니 분화구 건너 동편 수평선 보이는 바다 짙푸른 빛깔이 눈부시다.
나도 성산포에서 한 일 년 살면서 바다를 보고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