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우리가 윤동주의 이름을 불렀던 때가… 윤동주, 그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하다..북간도 출생. 용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경에 붙들렸다. 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암울했던 시대에 먼 남의 땅, 어두운 감옥에서 몸부림치며 짧은 마지막 생을 달랬던 시인, 윤동주-용정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 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기 앞서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그의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48년에 유고 30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비로소 알려지게 된 윤동주는 일약 일제강점기 말의 저항시인으로서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 주로 1938~41년에 쓴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십자가> <슬픈 족속(族屬)> 등 어느 한 편이라도 보배롭지 않은 것이 없다. 그의 시에는 울분과 자책, 그리고 봄(광복)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다.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며 마음으로 울부짖던 시인 윤동주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할 뿐이다. 연세대학 캠퍼스와 간도 용정중학 교정에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95년에는 일본의 도시샤대학에도 대표작 <서시>를 친필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 기록한 시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