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잦은 외침에 시달려 왔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외에도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 장군이 있다. 육전의 명장이자 도원수인 충장공 권율(權慄)장군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 이치대첩 등 수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권율 장군은 1537년 강화도 연동에서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의 아들로 태어나 158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사헌부 감찰, 낭관 등을 거쳐 1591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서 방어사 곽영(郭嶸)을 따라 서울을 수복하기 위하여 북진하다가 용인에 이르러 왜군에 패배를 당하고 광주로 되돌아갔다. 그후 장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다시 북진하였다. 황진(黃進)과 함께 이치(梨峙)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는 왜군을 맞아 싸워 격퇴시킴으로써 호남을 보존하였다.
그 공으로 그해 나주목사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었다. 1593년에는 명나라 군과 협력하여 서울 수복작전을 펴기로 하고 군사 2천여 명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들어가 진을 쳤다. 그해 2월 왜장 총수 우키다를 비롯하여 왜군 3만명이 공격하여 오자 일사불란한 통솔아래 관군과 의승병이 분전하여 적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혀 격퇴하였다.
이것이 행주대첩이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보여주는 권율 장군의 애국ㆍ애민정신, 유비무환의 정신, 공평무사의 정신, 엄정한 군기 등의 구국정신은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국가의 소중함과 국난극복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국민들의 정신적 표상이 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