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리는 경남을 대표하는 마당굿 가락인 화천가락을 익히느라 땀이 식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함께하는 마을사람들이 힘든 일을 이겨내기 위해 풀어내던 흥겨운 화천가락에 빠져 거듭되는 연습에도 지칠 줄을 몰랐다. 연마을 식구들도 2005년을 상징하는 205마리의 줄연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연지에 그림을 한 장 한 장 그리고, 대를 깎고, 연을 만들고, 꼬리를 붙이고, 계속 이어지는 작업을 행사 이틀 전에야 다 끝내고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지킴이부원들도 막일꾼이 다되었다. 오죽의 대뿌리를 자르고, 작은 솟대의 밑판을 자르고, 일일이 사포질을 하고, 설 구멍을 뚫고, 들기름 칠을 하고, 솟대 몸통과 꼬리를 정리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 설핏 잠에 들었다가는 다시 깨어나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다 보니 어느덧 행사장인 킨텍스에 닿았다. 우리는 <경남 교육의 날> 행사장인 킨텍스 3홀 앞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지킴이와 연마을은 서둘러 천막을 치고, 작품용 방패연과 서각 작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솟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신우리가 만장을 대나무에 붙이니, 울긋불긋 축제분위기가 난다. 민복으로 갈아입은 신우리의 복장이 눈에 띄게 아름답다. 공연도 아름답게 해주렴!
연마을 친구들은 하늘만 보고 있다. 주변 애드벌룬에 달린 커다란 펼침막을 보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람이 불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으니,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바람이 일게 해 주십시오'라고…. 드디어 바람, 연마을 친구들이 하늘에 연을 올리기 시작한다. 때맞춰 신우리의 풍물소리가 해군군악대 밴드소리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오방색의 깃발이 따른다. 깃발 하나하나엔 '신뢰와 감동의 경남 교육'을 나타내는 문구들과 우리 학교 동아리들 이름이 나부낀다. 경상도 촌놈이 경기도 와서 학교 이름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거기다 연마을의 205마리 줄연이 힘찬 날개 짓을 하며 하늘을 수놓고 있으니 '와 멋지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냥 감격에 겨워 있다가 언뜻 정신을 차리고 지킴이쪽을 보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솟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대박이다. 기분 좋다. '대단하다, 우리 효암고!'
실내 공연이 이어지자 관람객이 줄어든다. 천천히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연마을 친구들이 걱정이다. 두 줄의 연을 끌어서 내리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학우들이 구령을 맞춰서 연줄을 당긴다. 더운 날이라 땀이 비 오듯 한다. 힘차게 연을 당겨준 남자 학우들이 든든하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이때 서울지역에 진학한 선배들도 찾아왔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도 빨리 대학생이 되어야지. 그래서 후배들 앞에 당당히 서야지…' 몇 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들의 배려로 임진각을 들렀다. 파주 출판단지와 통일전망대, 그리고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훈련장을 스쳐지나 임진강을 끼고 임진각 까지 한달음에 내달았다. 자유의 다리에서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기념으로 사진 한 컷! 포로들이 넘어 왔다는 다리, 분단의 현장, 총을 든 군인들, 철조망 너머 저기가 북녘 땅이란다. 산은 똑같은 산이고 물도 똑같은 임진강물인데, 참 가깝고도 멀다. 경의선이 연결되었다니 이제 기차타고 갈수도 있겠구나. 그날이 언제지? 곧 오겠구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라도 가까이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다니 그냥 좋다.
피곤함과, 배고픔, 다시 긴 여행이 시작된다. 양산까지는 아득히 먼 곳인데, 몇 시쯤에나 집에 갈 수 있을까?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모두들 다시 힘이 솟는다. 행사를 잘 했으니 모두가 신나는가 보다. 왁자지껄한 게임소리에 버스 안이 요란하다. 기사님의 주의말씀도 약발이 약하다. 어쩔 건가? 신나는 것을! 촌놈들이 나라에서 제일 큰 박람회장에 와서 효암고의 존재를 보여주고 왔는데 잠이 올 리가 있나. 아무리 밤이 깊어도… 우리의 얘기는 밤과 함께 깊어만 갔다.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얼굴들 하나하나를 슬며시 살펴본다. 서로를 위로하며 행사를 준비한 시간들, 물 한 병에 목을 적시고 땀을 닦았던 기억들, 도구에 손을 다쳐도 씩 웃고 말았던 친구, 후배들 모두 고생 많았다. 고맙다, 멋지다, 친구들아! 우리 효암고 전통 동아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