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높으신 분들이 자녀들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이순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이순신은 1945년 3월 8일 한성 건천동에서 이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1572년 훈련원 별과에 응시했으나 낙방을 하고 76년 무과에 급제함으로서 무장으로서의 그의 삶이 시작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불멸의 이순신’은 1591년 전라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지 1년 뒤 임진왜란이 터지면서부터다.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조선군은 연전연패 했으며, 임금은 결국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준비를 착실히 했던 이순신은 치밀한 준비와 전략, 전술로서 일본수군을 격파하기 시작했고, 곧 조선의 ‘희망’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오늘에까지 존경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 수군을 무찌른 전공 때문만이 아니다. 조정대신들과 임금 선조의 견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념으로 묵묵히 전장을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연전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한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나라를 버리지 않았다.1572년 7월 원균의 대패로 조선수군의 거의 궤멸되자 다시 전장으로 나와 일본 수군을 맞아 용감히 맞서 승리를 일구어냈다. 그의 이런 모습이 오늘에까지 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MBC에서 방영한 PD수첩을 본 국민들은 분노와 더불어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국적법 개정에 앞서 자녀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대한민국 주류’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험난한 앞 날’을 보는 듯 했다. ‘이순신 장군이’ 너무도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