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을 문학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만들고픈 사람들‘두 셋만 모여도 불경기 타령이요, 느느니 한숨인데 시는 무어며 노래는 웬 노래일까?’ 공연한 지청구는 접어두자. 세상사는 일이 어디 먹고 마시는 일뿐이랴. 머리 싸매고 부질없이 걱정만 한다고 웅크린 경제가 기지개를 켜지도 않을 터이니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달려가 볼 일이다. 6월 25일 저녁 7시 30분.
웅상읍 삼호리에 있는 개운중학교(효암고등학교) 운동장에 멍석을 깐단다.
행여 비가 오면 학교 강당인 ‘효암헌’으로 옮길 요량이라니 비가 온들 어떠랴.
더욱 반가운 것은 시인 김용택과 정일근이 함께 한다는 사실.
다 알다시피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곳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티 없이 맑게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보배로운 시인이다.
그런가 하면 정일근 시인은 우리 양산의 웅상읍과 잇닿아 있는 울산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라는 산골에서 시를 쓰며 살고 있는 시인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 올라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행사의 1부는 ‘정일근 시인과 함께하는 푸른고래 시노래 콘서트’
<시노래 모임-푸른고래>가 시인 정일근, 김용택, 박남준, 김종경, 정호승, 대안스님, 안도현의 결이 고운 시들에 아리따운 가락을 붙여 노래 부른다.
2부는 ‘김용택 시인과 함께’하는 순서.
시인의 문학 이야기, 독자와의 대화, 김용택 신작 동시집 ‘내 똥 내 밥’ 사인회로 이어진다.<천성산문학회>가 주최하는 이날 모임은 <천성산문학회>의 창립식을 겸한 자리이기도 하다. 창립식이라고 해서 전에 없었던 또 하나의 새로운 문학모임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산사람들이라면 아는 이들은 이미 다 아는 <천성산시담회>가 이름을 달리해 새로 거듭나는 것이다. <천성산시담회>는 2000년 3월, 영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듬해 봄에 태동시킨 문학동아리.
처음 ‘시창작반’ 출신 15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회원수가 30여명으로 불어나고, 그동안 동인지도 세 차례나 내면서 회원들의 문학적 내공도 꽤 탄탄해졌다.
2001년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등단한 박극수 회장 말고도 양산시민신문에 ‘시가 있는 마을’을 연재하고 있는 배경희 시인, 울산시인협회 회장 김헌경 시인, 강미옥 시인 등 등단시인들이 모임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 등단과정은 거치지 않았지만 문학을 향한 열정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순수 아마추어 문인들이 저마다의 문학혼을 불태우고 있다. 이렇듯 모임이 커가면서 참여대상도 처음의 영산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출신에만 국한하지 않고 ‘천성산자락에서 천성산의 정기를 받고 살아가며 애오라지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로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쯤에서 모임의 활동영역도 ‘시’에만 한정하지 말고 ‘소설’, ‘수필’, ‘희곡’, ‘동화’ 등 문학의 모든 장르로 두루 넓히고 아예 모임 이름까지 바꾸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25일 가질 행사 점검을 위해 11일 낮, 웅상읍 매곡리 한 음식점에서 가진 임원모임에 들렀다. 얼른 보아 30대, 40대로 보이는 여성회원이나 50대말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성회원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고 있다. “여기서는 나이는 별 의미가 없어요. 흔히 하는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죠. 60을 먹어도 시에 대한 정열은 20대 못잖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 정다운 친구들입니다.”
한 젊은 여성회원의 말에 50대 남정네가 ‘껄껄’ 웃는다. 그런데 이들에게 도대체 문학과 시는 무엇일까?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세상, 시가 읽히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세상이 아닌가. “시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시인이 곧 독자가 아닙니까. 온 인류가 시인이 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 질까요. 공무원이 모두 시인이 되는 세상, 직장에 시인이 우글거리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 아닙니까. 저는 인간은 원래 시인의 본성을 지니고 세상에 온다고 믿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따름이죠.”
박춘호 초대회장에 이어 2대 회장을 맡고 있는 박극수 회장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천성산문학회>를 통해 우리 양산을 문학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만들어 가고 싶단다. “시가 무엇인가? 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만 가슴을 짓누르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창작반’에 등록을 했죠. 그러나 아직도 그 궁금증을 풀지는 못했어요. 시에 대한 영원한 구도의 길을 걸어야 할까 봅니다.” 지난날 어느 일간지 문화부 기자와 사회부 부장으로 필명을 드날린 저널리스트였던 김백 시인의 말에 방안이 갑자기 숙연해진다.“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신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과 통화할 수 있는 말은 곧 ‘시’가 아닐까 싶어 시의 길을 택했습니다.” 유년주일학교부터 교회에 다녔다는 박춘호 초대회장의 말에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제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지는 것 같았어요. 시의 미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발전적인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미옥 시인의 말에 모두들 잔잔한 미소를 흘린다. “저는 흙이 참 좋아요. 지금도 이따금 흙을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시는 마치 제가 한없이 좋아하는 흙과 같다고나 할까…” 조혜경 시인의 말에서는 상큼한 풀내음이 난다. “노년을 곱게 보내려고 시라는 친구를 사귀었어요. 마음에 시를 품고 살면 머리도 맑아지고 생각도 고와지겠죠.”
김영진 시인의 말이다. 59세, 60밑자리를 깐 나이에 어찌 저런 소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살 수 있을까? 다들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회원들은 대부분 영산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지도교수였던 정대구 시인의 문하생이다.
1936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한 정 시인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범대학과 숭실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72년에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우리 시단의 큰나무다. 여러 권의 시집과 수필집, 저서가 있는데, 특히 2000년 봄부터 시작된 양산생활을 노래한 시집 <양산시편>이 문예진흥원이 선정한 ‘2005년도 1/4분기 시부문 우수문학도서’에 뽑힌 것은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문하생들의 큰 기쁨이자 영광이다.
현재 영산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은 정일근이 시인이 배턴을 이어받아 지도하고 있는데 정일근 시인은 <천성산문학회>에도 각별한 애정을 기울이고 있어 자주 회원들을 찾아 이들이 지니고 있는 문학적 잠재력과 가능성에 불을 지펴주고 있다. 이제 6월 25일 <천성산문학회>가 출범하면 정일근 시인과 부산민족문학작가회의 박정애 부회장 등 쟁쟁한 시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이 문학회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약조했다니 회원들의 마음이 한결 든든하겠다.
“25일의 <시와 노래의 만남>이 우리들만의 잔치가 아닌, 양산시민 모두의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박극수 회장의 바람에 시민들의 멋진 화답이 있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