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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책과 더불어] 호텔선인장..
사회

[책과 더불어] 호텔선인장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6/16 00:00 수정 2005.06.16 00:00
사람과 사람의 만남

아파트인데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호텔 선인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오래된 건물을 무대로 '오이', '모자', 숫자 '2'라는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의 별명이 아닌 진짜로 '오이', '모자', 숫자 '2'이다.

각기 다른 성장 배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스스로 그렇게 되어버린 시니컬한 모자와 순수하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오이, 그리고 뭐든 분명치 않은 것은 참지 못하는 2.

세 사람이 함께 하고 있는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각자가 보고 있는 세상과 느끼고 있는 세상은 각기 다르다.

숫자 '2'는 위층에 사는 오이에게 운동을 멈춰달라고 말하기 위해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방을 찾아간다.

활발한 오이에게도 숫자 '2'의 방문이 이 아파트에 이사 온 후로 처음이다.

이 일을 계기로 중재를 맡았던 '모자'를 포함한 세 명은 '오이'의 방에 모여, 각자의 음료수를 마시면서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서로 취미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근본적인 사고방식도 다른 세 명이지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 가면서, 어느 덧 혼자일 때는 잘 몰랐던 즐거움과 쓸쓸함,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일상 속에서 '호텔 선인장'에서의 생활은 재미있게 지나가지만 이윽고 즐거운 날들에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덧없음'에 누구보다도 친숙한 '모자', 깊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듯하지만 내심은 무언가 잃어버리는 일에 서툰 '오이', 언제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길들이려 하는 숫자 '2'는 각각의 모양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반짝 반짝 빛나는> 등 군더더기 없고 세련된 문체, 감각적인 언어로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은 '에쿠니 가오리'의 세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은 '오이', '모자', 숫자 '2'라는 세 주인공들의 우정을 통해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 들어있는 몽환적인 삽화는 마치 동화책을 펼치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우리 주변에 쉽게 보이는 사물을 의인화 시켜 등장시킨 그녀의 글은 황당하지만 문득 고개가 끄덕여지는 묘한 공감을 준다.

너와 나는 분명 같을 수 없고 그냥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있다.

서로가 각자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서로의 다름이 만남의 신선한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해 유쾌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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