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서 구두끈을 매는 여인은 아름답다 / 내가 배를 타고 떠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 배 위에서 배낭을 메고 / 귀로 파도소리 들으며 / 눈으로 먼 섬을 가리키는 여인은 아름답다 / 그런 낭만은 어디서 배웠을까 /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줬다고 하면 그건 명교사다 / 빈집 문은 어떻게 잠그고 왔을까 / 요즘 도둑이 심하다든데 / 파도소리에 맞춰 / 콧노래 부르며 먼 섬으로 가고 있는 여인은 아름답다 / 여자여서 그럴까 아니 남자라도 / 그런 남자는 세상을 살 줄 아는 남자다 /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 살 줄 몰라서 방황하는 것인데 / 저렇게 떠돌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 정말 자유를 누릴 만한 사람이다 /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할까 / 우리만의 애국가를 부르고 싶다. - 이생진의 <섬으로 가는 자유인> 전편 교실에는 아이들의 들썩거림이 넘쳐난다. "선생님, 술 마셔도 되나요?" "카드는요?"저 편에서 "수학여행인데, 수학 문제집 가지고 가면 안 되나요?" 하고 싱거운 농담을 던진다. 아이들이 일제히 썰렁하게 재미없는 농담을 한 친구에게 심한 비난을 쏟아 붓는다. 또 다른 한편에서 수학여행 다녀와서 해도 될 두발검사를 왜 꼭 가기 전에 하냐고,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냐고 볼멘소리다. 그러자 교실은 두발검사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한 아이들의 불만으로 떠들썩해진다. "머리카락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길게 기르지 말라면 안 기르면 될 것 아니냐. 뭐 그리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냐."그러면 벌떼들처럼 대꾸하는 소리. 깍두기 머리 일명 귀두컷을 하고 다니면 쪽팔린다고.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기가 죽는다고. 여학생들에게 폼도 나지 않는다고. 삼손도 머리카락을 잘리고 모든 힘을 잃었다고. 머리카락은 우리의 에너지이자 프라이드이며 프라이버시라고…나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볍게 다룬 잘못으로 한참의 공격을 당하고 나서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설득을 당한다. 그렇지, 사소한 것이 중요한 저 나이. 나이 들면 사소한 것들은 사소해서 버려두고 중요한 것은 힘에 부쳐 밀쳐두고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어른이 될 텐데, 이 아이들의 사소함을 존중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목소리에 힘을 준다. "오늘 가서 머리 짧게 잘라 와."소지품 검사는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직접 하실 것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도 아는 놈들은 알 테다. 수학여행 가는 날인데, 적당히 넘어가리라는 것도, 눈치껏 하면 되리라는 것도. 나도 저맘때 저랬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 신통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리는 자율화였으니 아무 말이 없었던 것 같고… 그 때도 술을 마시고 방안 가득 토사물을 토해 낸 친구가 있었던 것 같고, 무슨 설움이었던지 엉엉 울었던 친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단지 하지 말라고 하니 한번 마셔보고 싶은 술, 피우지 말라고 하니 피워 보고 싶은 담배가 아니라 정말 사는 게 힘들어서,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술을 축내고 담배를 피워 대는 그런 때가 오면 너희들 한번 당해 봐라. 이 녀석들아, 살기가 얼마나 팍팍한 지… 낭만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명교사가 아니어서 나는 안타깝다. 들썩거리는 종례는 이렇게 끝이 나고, 우리는 여행을 갈 것이다. 행선지가 어디라도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 콧노래를 부르며 약간의 자유를 누리면서… 그 자유 뒤에는 반드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뼈아픈 배후가 있음을 느끼면서 아이들이 조금 자라고, 본격적인 여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