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박주영 선수의 미덕
사회

박주영 선수의 미덕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6/23 00:00 수정 2005.06.23 00:00

매주 토요일 필자는 KBS1라디오의 한 시사 프로에 출연한다. '라디오 정보센터-왕상한입니다'가 그것인데, 필자는 그 중에서 '인물로 보는 주간 뉴스 브리핑'(오후 1시 15분경 방송)이라는 코너를 맡고 있다.

한 주 동안 화제가 된 인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보자는 것이 이 코너의 목적. 약 10분 동안 진행되는 짧은 코너이긴 하지만 필자에겐 나름의 고집이 있다.

단순한 인물 소개에 머무르지 않고 뉴스의 행간이나 막후에 숨어 있는 어떤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 보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주에 소개한 박주영 선수만 해도 그렇다. 한국 축구의 전통적 고질병인 골 결정력 부족을 일거에 깨뜨린 탁월한 공간 침투 능력과 반 박자 빠른 슈팅, IQ 150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낮은 무게 중심에 기반한 환상적인 드리블 솜씨….

여드름 투성이의 스무 살 '축구천재'가 두 차례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보여준 뛰어난 능력에 대한 찬사와 분석은 이미 여기저기서 많이 쏟아져 나온 터. 필자마저 같은 얘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관계 맺기로 분석한 박주영의 성공 비결'이라는 새로운 접근은 그래서 시도됐다.

축구는 혼자만 잘 하면 되는 '개인경기'가 아니라 11명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단체경기'다. 따라서 선수 개인의 '탁월함'과 '창의성'의 미덕도 필요하지만 선수와 선수간의 '화합'과 '협동'의 미덕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종목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박주영 선수는 그런 미덕을 무난하게 잘 발휘해온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잘 나가던 운동 선수가 상대팀 선수의 반칙과 견제 이전에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에 상처받고 어느 날 갑자기 그라운드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매우 큰 장점이자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박주영 선수는 골을 넣은 뒤 '절제'와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발휘했다. 우선 골 세리머니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표현 방식을 자제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가 끝난 뒤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는 도움을 준 동료 선수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MVP상을 수상한 쿠웨이트전 직후 뛸 뜻이 기뻐해도 부족할 텐데 도리어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A매치 2경기 연속골을 넣은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분은 좋지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 더 기쁘다"고 답변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주영 선수가 국가대표 A매치 경기에서도 변함 없이 보여주고 있는 골 기록은 그가 선배와 동료와의 '관계 맺기'에서도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는 요즘 '잘 나가는 또 한 명의 한국인' 황우석 교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역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곤란한 질문에는 적절한 유머로 대처하고, 난해한 연구 내용은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타인의 생각을 철저히 무시하고 모든 것을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도 통하던 독불장군의 시대는 끝났다. 타인과의 상생의 관계 맺기를 통한 시너지 창출, 박주영 선수는 그런 미덕을 겸비한 사람만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