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방망이로 시작해서 방망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간혹 국회의원들은 치열한 의사봉 쟁탈전을 벌이곤 한다.작년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놓고 법사위에서 벌어진 치열한 몸싸움. 의사봉을 찾을 수 없자 최재천 의원(열린우리당)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런가하면 지난 3월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에 반대하며 법사위를 점거한 한나라당 농성 4인방이 의사봉을 숨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이 같은 의사봉 쟁탈전은 가치가 있을까? 없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행위가 법적 효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 의사국 김선홍 씨는 "의사봉을 두드리지 않았다고, 법적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선포를 하면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의사봉은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의사봉은 권위와 관행의 상징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해당 위원회에서 각각 별도로 구입해서 쓰고 있다"며 "본회의장에서 쓰이는 의사봉 세트는 22만원 정도"라고 밝혔다.하지만 시중에서 의사봉을 제작·판매하는 A업체는 "재료에 따라 다르지만, 향나무 같은 고급 재질 세트의 경우 6만원"이라며 "이 제품을 대기업에서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두 업체에도 알아본 결과, 의사봉 세트는 각각 7만원과 1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22만원이란 가격에는 '국회 권위를 세우기 위한 거품' 또한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현재 국회에는 본회의장을 비롯, 17개 상임위 회의장, 예결위 회의장, 특위 회의장 등에 의사봉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4월부터 산업자원위원회는 의사봉을 쓰지 않고 있다. 새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용갑 의원(한나라당)이 "국회법 어디에도 의사봉 관련 규정은 없다"며 "불필요하고 권위적인 관행을 없애기 위해 의사봉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이다.의사봉은 합의의 결과물을 상징한다. 하지만 우리 국회에서 의사봉은 오히려 '합의를 방해하는 상징물'로 자주 사용됐다. 합의를 도출하려는 머리 싸움보다, 의사봉을 차지하려는 몸싸움을 선택한 경우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봉은 박물관으로 보내도 되지 않을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