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732~781), 그는 고구려 유민이었다. 그런 그가 중국 대륙의 한 복판에 ‘제’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많이 없다.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수십만의 고구려인들을 끌고 돌아갔다.이정기는 그렇게 끌려간 고구려인들의 자손이다. 732년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정기는 무장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평로절도사 산하의 비장으로 근무한다. 그러다 755년 안녹산이 난을 일으켜 하북지역을 장악해 당나라 ‘내분’이 심화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구려 유민출신 군사들과 함께 평로절도부를 장악했다그 후 2만이라는 적은 군사로 산동성을 점령하는 것을 시작으로, 10여만의 당군을 격파하고, 15개주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때 그가 지배한 지역의 인구가 130만호에 800여만(고구려 멸망 당시 69만호)이라고 하니 능히 그 규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멸망을 일생의 목표로 진군하던 이정기는 안타깝게도 781년 49세의 갑자기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정기 사후 제나라는 아들 이납과 손자 이사고, 이사도 등으로 이어졌으나 818년 결국 멸망하고 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때 제나라를 멸망시킨 일에 또 다시 신라라 일조를 했다는 것. 신라는 당나라의 요청에 수만의 군사를 파견해 또 다시 나ㆍ당연합군을 결성, 제나라를 공격했다. 결국 ‘제’나라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외세와 민족, 둘 모두로 인해 멸망한 것이다. 중국 대륙 한 복판에 세워졌던 ‘제’나라.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멸망한 조국을 다시 일으킨 이정기라는 사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종영된 ‘장보고’라는 드라마에서 ‘제’나라의 ‘이사도’를 ‘도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작가의 역사적 무지에, 또 그 ‘무지’로 ‘역사극 대본’을 써나가는 ‘배짱’에 혀를 끌끌 찼는지 모른다. 제발이지 역사극만은 함부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