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 "이 시에서 □□에 어떤 낱말을 넣으면 좋을까? 시 제목을 생각해 봐. 묵화(墨畵)는 여백(餘白)과 먹(墨)의 농담(濃淡)으로 이미지를 제시하는 동양화잖아. 낮에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밭을 매고, 고추도 땄을 거야. 다른 사람 없이 할머니 혼자서. 그 할머니 옆에서 소 역시 혼자 풀을 뜯으며 할머니 곁을 지키며 하루 내내 서 있었겠지. 이윽고 산그늘 길게 내려와 소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하루 종일 목말랐을 소에게 물을 먹이며 소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하하, 한번에 30리터도 더 마신, 완전 소~. 와하하하.""하루 종일 찾아 온 사람 하나 없는 저녁 무렵 산골 외딴 집 모습이 눈에 선하지? 낮 동안 내내 서서 일을 해 발잔등이 퉁퉁 부은 할머니가 연민의 눈으로, 정으로 물 먹은 소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 눈에 선하게 묵화로 피어나게 하는 한 낱말을 찾아 봐.""편안하다고.""왜?""힘든 일이 이제 끝났잖아요.""허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한 부분에 치우친 답 같네. 다른 답을 찾아보자.""불쌍하다고.""좀 나은 것 같은데 너무 주관적 감정을 바로 말해서 시적인 표현으로는 좀 문제가 있네.""힘들다고.", "가련하다고.", "쓸쓸하다고.""힘들다고는 불쌍하다와 비슷하고, 가련하다고는 감정을 객관화한 점이 좀 나은 것 같네. 쓸쓸하다고는 분위기와도 어울리고 한결 낫구나. 시인은 뭐라고 했을까? 시인은 '적막'이라는 낱말을 넣었어. '적막'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다른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지지?""분위기가 칼라에서 흑백으로 바뀌는 것 같네요.""와~ 참 좋은 표현이다. 묵화라는 제목이 그대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구나. 그럼 다른 시 한편을 보자."―절망한 자는 대담해 지는 법이다 : 니체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최승호의 <인식의 힘> 전문나는 내 시의 짧은 다리 때문에 얼마나 절망했을까. 절망이 부족해서 날개 돋힌 시를 아직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