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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타율과 자율
사회

[교단일기] 타율과 자율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6/30 00:00 수정 2005.06.30 00:00

갈수록 교단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이 예로부터 전해오던 바람직한 가치를 전수하고 새로운 시대의 바람직한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토의와 토론을 거친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교육현장에서 먼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는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에게 매우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겪게 한다.

체벌과 두발 자율화 문제가 그 대표적인 문제로 어제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사실, 이 두 문제는 교육 전반에 걸쳐 있는 타율성과 자율성에 관한 문제로 요약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경험했듯이 체벌이 가지는 교육적 효과는 대단하다. 즉, 최소한의 수단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체벌이다. 물론, 모든 체벌은 교육적으로 행해진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체벌의 효과는 아주 짧은 시간에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폭력성을 동반한 강제성에 승복하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맞았던 기억이 추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여기에 잠재된 폭력성은 학습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다.

두발 자율화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논쟁 속에 있다.

자율화에 찬성하면서도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용모단정'함이라는 규범 속에 두발 형태를 규정하고 고수하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앞 세대가 이러한 갈등에 놓여있다면 뒷 세대는 두발 자율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도 완전 자율화를 말한다. 자신의 머리 형태에 알맞은 머리 모양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실제 학교생활에서 교사와 학생들 간 갈등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가 이렇다면 생활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토론과 토의를 통해서 충분히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 학교는 그렇지 못하다.

체벌과 두발 자율화 문제로 나타나는 학교 안의 자율과 타율의 문제는 '지금-여기'의 문제다. 교사들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일방통행식의 지시와 통제를 넘어 협의와 자율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코 앞에 닥친 입시를 준비해서 대학에 진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당에서 보면 너무나 이상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와 군인들이 국가의 주인 노릇을 했던 시대에 교육을 받고 성장했던 세대들에게는 어려운 삶을 이겨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어 확고한 방향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앞 세대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풍요 속에 성장하고 있는 뒷 세대에게는 그러한 간절함이 없는 것 같다.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려는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존 가치와 규범에 대한 거부와 일탈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서로가 등을 돌리고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꼴이니 처음부터 진정한 대화가 성립하기 어렵다.

타율과 자율의 문제는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어 토론과 토의로 그리고 대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다 보면 '지금-여기'에 가장 정합성을 띤 논리가 마련되고 그것을 내면화해서 교육의 장에서 풀어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누군가 내지르는 고함소리에만 우르르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교육현장은 늘 타율인가 자율인가 하는 문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일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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