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진솔한 대화는 늘 유익하며 공감이 간다. 오랫동안 교단에서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깨달음을 통해 후배 교사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배 선생님들과 이제 막 교단에 서서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생기가 넘치는 후배 교사들의 자리는 진지하다.술자리에서는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고선, 금방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꺼낸다.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진지한 토론이 이어진다. 이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그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음으로써 학교 간 정보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좀 더 나은 문제 해결 방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무리를 벗어나 한 쪽에서 선배 선생님 한 분과 후배 선생님 한 분이 한창 논쟁을 하고 있다. 너무도 진지해서 끼어들기는 어렵고 해서 가만히 들어보니 참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한다. 그 논쟁은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 난'에 학생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선배 선생님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적으면 안 되며, 우회적으로 적어야 된다'고 한다. 이에 후배 선생님은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적는 게 맞다'고 한다. 그러자 선배 선생님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하신다. 예전에 한 학생이 고교를 졸업한 후 경찰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단다. 그 이유는 생활기록부에 성실하지 못하다는 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란다. 만약 그 때 그 학생의 담임선생님이 '성실하지 못하다.' 라고 적지 않고 '성실하려고 노력함'이라고 적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후배 교사의 반론은 이렇다.
"그렇게 되면 온정주의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한 인간의 바람직한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교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록함으로써 학생이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원칙을 세워야 된다고 봅니다. 원칙에 충실해야지 온정주의에 빠질 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모든 교사가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선배 교사의 재반론이 또 이어졌다.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네만, 같은 값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런 논쟁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두 선생님이 나중에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다. 객관식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한 인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대학입학 시험에 대한 새로운 평가 방안이 대학별로 발표되고 있다. 논술이 중시되는 평가라는 게 공통점이라고 한다. 학교수업에서는 제대로 준비하기 어려운 통합형 논술이라 공교육에서는 손댈 수 없는 평가를 대학이 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하등사고능력을 측정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고등사고능력을 평가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거기에 위의 두 선생님이 제기한 인간의 잠재적 발달 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들어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