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1962∼1966) 계획이 끝나고 제2차 경제개발 5개년(1967∼1971)계획이 추진 중이던 1968년 2월 1일에 착공되어 2년 반 만인 1970년 7월 7일, 마침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이로써 천리길 서울∼부산이 4시간 거리로 단축된 것이다. ‘단군 이래 대역사’로 일컬어지면서 시작된 이 공사는 총 길이 428km에 공사비 429억원, 예정공기 4년을 훨씬 앞당긴 2년 5개월 만에 완공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이 외국의 원조나 차관 없이, 순전히 우리 기술만으로 공사를 진행한데다 공사비도 세계 고속도로건설 사상 유례가 없는 낮은 비용을 들인 것을 두고 당시의 언론과 여론은 대통령 박정희를 찬양하기에 바빴다.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자면, 적어도 1박은 각오해야 했던 것을 하루에 왔다 갈 수 있게 바꾼, 이른바 서울-부산 ‘일일생활권시대’를 열었으니 어찌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어쩌면 박정희라는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건설기술과 장비의 부족, 그리고 험준한 산악이 가로막는 가운데 77명의 아까운 목숨이 숨졌지만, 대통령 박정희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는 분명 70년대 이후 가시화된 근대화의 상징이며 견인차였다. 하지만 건설의 착상에서부터 소요기간, 예산, 공사과정 등에 너무나도 전근대적인 한국적 성장의 모습들이 함축돼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잉태된 고질적인 건설의 비리와 압축성장은 삼풍백화점과 같은 후진국 건설의 표본을 낳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