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통증은 다시 당신의 어머니께로 뻗쳐 눅눅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할아버지께서 임종하시고 난 후부터 몇 년 째 거동을 제대로 못하시는 어머니의 어머니, 나의 외할머니. 일곱의 열매를 주렁주렁 잘 키워 놓으신 당신의 자식들은 또 그들의 열매를 알뜰히 맺어 놓았다. 나는 그 열매의 열매.우기는 이렇게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가? 이런 날에는 살결 고운 감자를 삶고, 지짐을 붙여 놓고 세상에 할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듯, 가족과 그 시간을 맛보는 것이 최고다.
대학 시절, 배추전과 찹쌀 호떡을 간식으로 내어 놓으시던 분.(내 기억에 그 때는 항시 중간고사 기간이었던 듯하다.)
나는 그 간식 값도 제대로 못하고 나이만 먹어 버렸지만, 세상의 모든 음식은 추억 속에서 더 그윽하고 달콤하다.이런 우기에 그리움은 대체로 후각적이다.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이것은,
치명적인 냄새
식은 감자알 갉작거리며 평상에 엎드려 산수숙제를 하던,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열한 식구 때꺼리를 감자 없이 무슨 수로 밥을 해대냐고, 귀 밝은 할아버지는 땅 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 들린다고 흐뭇해하셨지만 엄마 난 땅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무서운데,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 식구들이 밥상머리를 지킨다.
하나 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꽂히지 않는다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건 싫어하게 된다더니, 감자 삶는 냄새
이것은, 치명적인 그리움
꽃은 꽃대로 놓아두고 저는 땅밑으로만 궁그는,
꽃 진 자리엔 얼씬도 하지 않는,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애기집
김선우, <감자 먹는 사람들> 전편
강원도가 고향인 시인의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열한 명 대 식구의 일용할 양식인 감자. 댕글댕글 감자알처럼 어머니 뿌리에 매달린 식구들. 할아버지는 땅 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를 들으시고 흐뭇해하셨다고. 그 감자알 중에 하나는 착하고 예쁜 시인이 되어 그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그 때의 가난도 저녁밥도 서럽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건 오직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이제는 늙은 애기집의 어머니 때문.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그 감자의 힘으로 알뜰하게 시를 쓰는 시인이여. 이맘 때 쯤 그리움은 얼마나 후각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