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 구워주었으면 모자랄 텐데 굽기 싫어 남긴 거지?” “히히, 어떻게 알았죠?”
가져 간 걸 다 먹은 조가 거의 없다.
“참, 큰일이야. 자식 귀하다고 어른들이 다 해주다보니 요즘 아이들 사과 깎아 먹을 줄도 모르고, 뼈 바를 줄도 몰라 생선 거의 먹지 않잖아. 스스로 수고하며 사는 즐거움 같은 것 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그만큼 잃고 있다고 해야 하나.” 머리 허연 일어 선생님이 탄식을 한다.“풍요가 좋기는 한데. 그 풍요 때문에 잃은 것도 많은 것 같아요. 내 삶을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또 모든 것을 상대적인 가치로만 여겨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잖아요. 모든 걸 걸고 대결해 볼 것이 없어진 세상을 좋다고 해야 하나?” 젊은 국어 선생이 한 마디 거든다. 평상 옆 버드나무 사이로 보름 갓 넘긴 달이 어느새 휘영청 솟아 있다. 조조의 싯구에 월명성희(月明星希) 오작남비(烏鵲南飛)라는 구절이 있더니 달이 밝아 별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웬만한 모델보다 늘씬하고 이쁜 K가 키 크고 잘 생긴 Y랑 손잡고 가다 불려왔다. 부른 선생님이 “누가 먼저 좋다고 했니?” 했더니 의외로 K가 그랬다고 하며 그냥 이성친구일 뿐이라 한다. “언제까지 사귈 거니?” “몰라요. 싫어지기 전까지 사귀죠 뭐.” 사귀는 것 너무 티 나게 드러내지 말라고 하며 보내고 난 다음 젊은 국어 선생이 “저 둘 얼마나 갈까?”하니 다른 선생님이 “그냥 싫어지기 전까지 사귄다고 하잖아요. 한 해 넘기기 쉽지 않겠지만 혹 길게 사귄다 해도 대학 같은 곳에 가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졸업하며 끝이겠죠. 참고 기다리며 스스로 만들어 가는 즐거움을 모르는 세대이니.”한다.사랑에 애달아 사랑밖에 보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에 인생의 전부를 걸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대 한 사람이 우주 전부와 같은 무게일 때가 있었다.어느 날 당신과 내가 / 날과 씨로 만나서 /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우리들의 꿈이 만나 /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 어느 겨울인들 /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전문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화자의 진솔하고 간절한 소망을 강조하여 펴나가고 있다. 사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내가 날과 씨가 되어 한 폭의 비단을 짜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오랜 기다림과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커피 마시는 것과 같을 뿐이라면 자판기에서 부모가 뽑아 줄 수도 있고, 부모가 태워 줄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사랑은 남이 뽑아 주거나 태워 줄 수 있는 커피가 아니다. 수고스럽지만 나와 네가 날과 씨가 되어 한 올 한 올 짜내어 마침내 한 폭의 비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랑이며 삶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뭘 가르쳐야 할까? 서편으로 기운 달이 버드나무 가지 끝을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