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연배가 높은 그는 토요일 한낮에 백석의 국수를 삶고, 나는 토요일 늦은 밤에 박정대의 국수를 삶는다.
눈이 많이 와서/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이것은 오는 것이다./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새기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 마니가/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먼 옛적 큰아바지기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전편-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우르가를 보는 밤, 곰보는 징기스칸의 후예, 테무친 같은 나의 아들은 잠들고 참으로 고요한 밤이다, 몽골 영화 우르가를 보면서 자꾸만 그대의 초원에 우르가를 꽂고 싶은 밤이다// (…) //술을 마시며 우르가를 보는 밤이다, 술에 취해 몽골의 낮은 구릉들에 취해, 우르가의 풍경을 듣는 밤이다//나는 고독의 후예, 삶에 취한 밤이면 나도 말을 타고 한세상을 건너가지//나도 말을 잘 타지, 그대에게 취한 밤이면 말을 타고 아득한 시간의 저편으로 나는 마구 달려가네, 우르가를 들고 그대의 드넓은 초원 위를 달려가는 나는 고독이 사랑한 生의 후예//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
-박정대, <우르가> 중에서-이 여름, 토요일 낮에는 좋은 이웃들과 함께 먹을 국수를, 밤에는 낯선 나라의 영화를 보다가 혼자 먹을 국수를 삶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