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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국수와 국수
사회

국수와 국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7/27 00:00 수정 2005.07.27 00:00

국수를 삶는단다. 퇴직한 교감선생님과 이웃의 동료들과 토요일 오후 점심으로 국수를 먹는단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주변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전해져 온다.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라며 백석의 <국수> 한 구절을 읊어대는 그는 이미 낮술에 약간 취한 모양이다. 그의 고운 아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삶아내는 모습이 떠오른다. 지붕에 마당에 함박눈이 쌓여 내리는 한겨울에 먹는 국수가 아니라 칠월 염천 한낮에 지아비의 친구들을 위해 하얀 국수를 건져 올리는 아내의 손길이 참 아름다울 것이다. 복날이라고 들썩거리던 식당의 삼계탕은 이 고담하고 소박한 국수 한 그릇에 비길 바 아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그는 토요일 한낮에 백석의 국수를 삶고, 나는 토요일 늦은 밤에 박정대의 국수를 삶는다.
 
눈이 많이 와서/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이것은 오는 것이다./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새기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 마니가/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먼 옛적 큰아바지기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전편-

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우르가를 보는 밤, 곰보는 징기스칸의 후예, 테무친 같은 나의 아들은 잠들고 참으로 고요한 밤이다, 몽골 영화 우르가를 보면서 자꾸만 그대의 초원에 우르가를 꽂고 싶은 밤이다// (…) //술을 마시며 우르가를 보는 밤이다, 술에 취해 몽골의 낮은 구릉들에 취해, 우르가의 풍경을 듣는 밤이다//나는 고독의 후예, 삶에 취한 밤이면 나도 말을 타고 한세상을 건너가지//나도 말을 잘 타지, 그대에게 취한 밤이면 말을 타고 아득한 시간의 저편으로 나는 마구 달려가네, 우르가를 들고 그대의 드넓은 초원 위를 달려가는 나는 고독이 사랑한 生의 후예//국수 삶는 출출한 밤이다
-박정대, <우르가> 중에서-

이 여름, 토요일 낮에는 좋은 이웃들과 함께 먹을 국수를, 밤에는 낯선 나라의 영화를 보다가 혼자 먹을 국수를 삶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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