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가 흔하지 않던 1960년대 고향 경주에서 해마다 공연되는 곡예단의 연극과 쇼, 마술, 서커스를 감명 깊게 관람한 후 서커스에 매료되었습니다. 인간이 신체로 미적 감각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인 곡예에 내가 직접 빠져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결국 서커스단의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어려운 광대의 길을 택하여 현재까지 외길을 걷고 있습니다..지난날 MBC 제3기 탤런트에 선발되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탤런트라는 편안한 길을 두고 굳이 서커스를 붙든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요?
=동춘에서 맡은 역할이 워낙 다양하고(사회, 연극주연, 원맨쇼, 가수) 큰 비중을 차지해서 제가 빠지면 당장 프로그램에 막대한 지장이 있고, 역할 교체할 단원을 보충 시킬 수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의리를 지키느라 그렇게 된 셈이죠. 그동안 40년 서커스 인생에 애환이 많았을 것으로 압니다만, 특히 힘들었던 일과 보람 있었던 일은?
=땅을 빌릴 수 없어서 대식구가 오도가도 못 한 적, 1980년의 태풍 ‘쎌마’와 2003년의 ‘매미’로 인해 전 재산(텐트, 조명, 앰프, 철탑 등 고가의 장비)이 다 없어지고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적, 1980년도 동춘의 명배우 코끼리 ‘제니’의 죽음이 아픈 추억이라면, 가족 3대가 함께 관람하며 온 가족이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없는 즐거움이지요. 처음엔 자녀는 걸리고 부모님은 리어카에 모시고 왔던 그 30대 가장이 세월이 흐르면서 경운기로 모시고 오다가 요즈음엔 자동차로 모시고 오면서 ‘동춘’이 가는 곳마다 찾아오는데 이런 분들이 바로 ‘동춘’을 버텨내게 하는 큰 힘이죠. 특히 문화 소외지역에 사시는 농어민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자녀들도 부담 없는 비용으로 부모님들께 효도하게끔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꽤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프로필을 보면, 82년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서커스 배우로서 늦은 나이에 대학공부는 조금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집니다만…
=정확하게 말하면,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원 경영학과입니다. 서커스단 경영인과 각종 대중문화예술의 기획인으로서 서커스를 좀더 발전시키기 위해 2000년도에 이 과정을 수료했습니다.현재 대학(서울예대)에 출강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박 단장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40여 년 동안의 공연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 해야 할 필요성과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접목시켜 관객에게 우수한 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배우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열심히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문에서 ‘동춘’의 전용극장을 착공했다는 기사와 ‘서커스 아카데미’를 구상 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 계획의 추진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1,500석 규모의 서커스 상설극장을 건축하여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국 대중문화의 모체와 가장 한국적인 서커스를 관광코스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외화획득에 일조하며 다른 한 팀은 종전과 같이 전국 순회공연을 할 계획인데 건물은 지금 한창 건축 중으로 금년 12월에 완공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커스 아카데미’는 상설극장이 완공된 뒤, 내년 3월쯤 개강할 예정입니다. 양산공연에 앞서 시민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그간 양산에서 공터 임대가 마땅치 않아 서커스공연을 못했는데 이번기회에 ‘동춘’이 양산실내체육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저 박세환과 동춘의 전 단원은 양산 시민여러분께 감동적이며 즐거움을 드리는 공연으로 보답코자 합니다. 또한 양산시민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프로필>
1963년, 동춘곡예단 배우 입단 / 1976년 5월, 주연배우-동춘곡예단 3대 단장 취임 / 1982년 3월, 연세대학 사회과학원 경영학과 수료 / 1989년 3월, 문화관광부 산하 (사)한국곡예협회 총회장 취임
현재, 서울예술대학 교수 / (사)한국기예협회 총회장 / 동춘곡예단 단장 / 한국곡예예술단 단장 / (주)동춘흥업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