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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성주(星州), 따뜻한 별나라..
사회

성주(星州), 따뜻한 별나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8/17 00:00 수정 2005.08.17 00:00

나는 휴가의 흥겨움 또한 만만찮겠지만, 길 떠나는 사람을 방안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생각으로 여름휴가를 대부분 방안에서 보내는 나는 여름 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밀리는 고속도로 위의 줄지어 선 차를 딱하게 지켜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은 평소의 역방향과 달리 나도 휴가의 긴 줄에 끼어들게 되었으니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가는 휴가. 커다란 여행 가방에 생각 없이 물건을 챙겨 넣고 떠나는 모녀의 동행.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는 약간 비껴 바다도 아니고 계곡도 아닌 고향을 찾아 가는 길. 이번 여행은 휴가라기보다 묵은 빚처럼 마음에 남아있던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셈이었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산소를 찾는 일이 드물어지고 그 일은 늘 아들의 몫으로만 생각해 왔던 나에게 이번 여름휴가는 고향인 성주로 가야겠다는 이상한 의욕이 생겼다. 이런 나의 이상증세는 나이가 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이라고 해야 나에게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그곳은 나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곳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도시락을 훔쳐 먹은 벙어리(이 이야기는 지극히 감동적인 면이 있다), 쌀뜨물을 먹이면 잘 자란다는 빛나는 돌, 총알 세 발과 별 세 개, 황순원의 <일월>을 읽고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밤새도록 만지고개를 왔다 갔다 한 이야기, 젊은 시절의 면장 출마 이야기, 이야기들. 그 많은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 나는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고향이라는 말이 그리움과 동의어가 되는 것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세월의 힘인가?

풀이 무성한 산길을 헤치고 다다른 산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엉성하게 벌초를 하고 술을 올려 절을 한 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은 그지없이 고요하였다.

큰어머님과 사촌 형제들이 다 지키고 있는 고향 마을은 팔월의 뙤약볕 아래 숨을 죽이고 있다가 어머니와 나의 출현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일가친척들의 반가운 인사가 계속되고 나는 그들과 같은 종족으로서의 유대감을 거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풍성하고 아쉬웠다. 농사지은 것들의 품평회라도 하라는 듯 큰어머님은 더 실을 곳이 없다는 데도 봉지 봉지에 자꾸 무엇인가를 담으신다. 참외, 복숭아, 깻잎, 케일, 호박잎, 고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성주가 고향인 문인수 시인께서는 이렇게 노래하셨다.
 
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다.
 
대구에 가면 이런 거 흔하고 흔합니다 헐하고 헐합니다 하고 말렸으나 어머니는, 나도 많이 늙었다 오래는 더 못살겠다 하시면서, 무말랭이며 머귀나물 매운 풋고추 같은 걸 자꾸 챙겨 주셨다. 이만큼 전송 나오시다가 또 쫓아들어가 다른 거 한 보퉁이 들고 나오셨다.
 
무릎 앞에다가 이것들을 끌러놓고 깊이 냄새를 맡는다 어느덧, 여름밤 천지에 가득하고 그윽한 먼 별 빛,
 
긴 바람의 젖을 물고 나는…
 
-문인수, <젖>전편-
 
고향은 어머니의 젖 냄새를 풍기고, 나는 먼 시절, 큰어머님 등에서 나던 그리운 냄새를 맡는다. 성주(星州), 따뜻한 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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