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의 국정감사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제도다. 이같은 국감은 언제 처음 시작됐을까. 1948년 공포된 제정헌법 제43조가 근거다.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1949년에 국정감사계획이 가결, 최초의 일반국정감사가 실시됐다. 진통이 시작됐다. 사법권과의 마찰이었다. 당시 검찰은 국회의 서류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대한 국회의 간섭은 사법권 침해라는 이유였다. '준사법과 입법의 충돌'로 시작된 국감은 5.16쿠데타로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제정헌법 43조에 "다만, 재판과 진행 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는 단서가 추가됐고, 1972년 유신 정권에 의해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가 전면 중단되고 만다. 하지만 국감은 16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개정된 헌법에 국정감사권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로 인해 민주화 운동의 전리품 성격을 띠면서, 사실상 국감은 존폐를 거론하기 힘든 일종의 '성역'으로 자리잡았다.그러나 해마다 '국감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정쟁도 정쟁이지만, 너무나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를 위해 요구한 서류는 자그마치 73,695건. 한 사람이 평균 3,354건의 서류를 요구했다는 말이다. 서류 한 건을 검토하는데 5분씩만 잡아도 280시간이 걸린다. 열흘 내내 밤샘 작업을 하더라도 소화하기 어려운 엄청난 분량이다. 그야말로 벼락치기인 셈이다.작년 실제 국정감사일수는 17일. 이 기간동안 국정 사안 전반을 효과적으로 감사한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인지 모른다. 이제 다시 국감시즌을 맞는다. 국가적 에너지를 탕진하는 의원, 그리고 절약하는 의원이 누구인지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여의도통신 = 이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