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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안개와 구름 같은 부분 읽어보기..
사회

안개와 구름 같은 부분 읽어보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8/25 00:00 수정 2005.08.25 00:00

"그게 무엇이든 의도한 대로만 만들어서는 좋은 작품을 넘어서는 대작을 만들진 못해. 의도한 그 이상의 것을 녹여 넣어야 대작이 되는 거야."

시를 쓰지는 않지만 시를 가르치고 있는 동생이 내가 새로 낼 책 원고 한 번 읽어보고 고칠 부분 있나 봐 달랬더니 읽지도 않고 하는 말이다.

"불편한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도공 친구도 그런 말 하데."

"시도 그래. 틀을 지나치게 깨면 틀도 모르는 아마추어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그렇다고 너무 틀에 맞는 작품으로 만들면 극적 반전이 없는, 끝이 뻔한 추리물 같아 삼류라는 느낌이 들게 해. 동양화의 신비는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안개와 구름으로 가려진 부분에서 나오잖아. 무언가 명료하게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신비로운 느낌이 들게 하는 거야."

"하하하, 결국 내 시나 글이 삼류라는 말이구나."

"그런 말이 아니라 왜,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강은교 시인 있잖아. 그때 '우리가 물이 되어'란 시 참 좋아했잖아. 다 명료하게 해석하지도 못하면서."

"그래, 그 시 속에는 구름 속에 가린 부분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만한 부분도 있고 잘 해석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 불로 만나려 한다. /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 저 불 지난 뒤에 / 흐르는 불로 만나자. //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 올 때는 인적 그친 /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전문

'우리'의 만남이 '물'의 상징적 이미지로 이루어진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물'로 만나 키 큰 나무 같은 존재랑 섞여 '우리'는 '강물'로 흘러 아직 처녀(處女)인 '바다' 닿고 싶다.  빗방울 하나같은 우리나 키 큰 나무 같은 큰 존재인 우리들이 다 함께 하나가 되어 강물을 이루어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니 '우리'는 단순히 사랑하는 '그대'와 '나'일 수 없다. 또,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니 '그대'는 '나'와 아직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연인 사이가 아니다.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가 되어 흘러가야(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격동의 80년대, 민주화와 생존권 사수를 위해 분신하던 열사(烈士)로 인해 들끓던 세상. 그때 이미 숯이 된 뼈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들, 함께 타오르던 사람들이 생각나게 하는 시라고 하면 웃을 사람들 많겠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흘러 아직 처녀(處女)인 바다에 닿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 하지만 언제나 세상은 누구도 끌 수 없는 불로 타오르는 세상인 걸.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넓고 깨끗한 하늘을 열자'는 소망은 언제나 극복할 수 없는 현재일 뿐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웃을 거야."

"안개와 구름 같은 부분은 내 맘대로 읽어도 좋잖아. 그릴 때 좀 넣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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