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 1차 명단을 발표한 지난 8월 29일은 우리의 주권을 일제에게 완전히 빼앗긴 치욕스런 날이었다.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게 양여할 것을 규정하는 조칙을 발표했다. 이 날이 바로 우리 한민족 역사상 가장 부끄럽고 욕된 '경술국치일'이다.나라를 되찾은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나라를 빼앗긴 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터에 '나라가 부끄러움을 당했던 그 날'로부터 세월은 어느새 95년이나 흘렀다. 일찍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기념일, 3ㆍ1기념일과 함께 8ㆍ29 국치기념일을 3대 기념일의 하나로 추념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엔 공식적인 기념식이 개최되지는 않았으나, 달력에는 국치일이 빨간 글씨로 표시돼 있었고, 이 날을 맞아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행사가 중앙청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친일세력이 주축을 이룬 이승만 시대에는 달력으로나마 기념됐던 국치일이 한일관계가 복원된 박정희 시대에 들어와서는 달력에서마저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그것은 광복 60돌을 맞이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때마침 광복 60주년인 올해 국치일에 지난 60년 동안 우리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였던 친일청산의 분수령이 될 친일인명사전 수록 1차 명단이 발표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이번에 발표된 명단에는 유치진, 조연현, 남인수, 손목인, 박시춘, 장지연, 김은호 등 경남지역의 인사들도 다수 눈에 띈다. 우리 양산이 자랑스러운 양산의 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이원수 선생은 통영의 청마 유치환과 함께 1차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드러난 친일행적이 분명한 만큼 내년에 발표될 2차 명단에는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원수 생가복원을 비롯해 고향의 봄 동산 조성 등, 이원수 관련사업을 통해 양산의 이미지를 한껏 고양시키려 했던 양산시의 계획도 적잖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시는 이미 계획된 사업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이원수 선생의 문학적 업적만 내세워 사업추진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는 다른 지자체의 사례에서 보듯 감당하기 쉽지 않은 저항에 부딪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정신을 읽는 혜안이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