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학 입학을 위해 겪었을 두려움과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등교 시간이 늦추어지고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도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서 보니 1학기 수시 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은 수업에 관심이 없다. 장 있을 중간고사를 대비하여야 한다고 해도 반응이 없고 각자 자신의 일을 한다.
잠 자는 아이, 만화책을 읽는 아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이 등.2학기 수시와 정시 모집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긴장되어 있다.
잠을 푹 자지 못한 퀭한 눈으로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거나 필기를 한다고 바쁘기만 하다.
수업 중 농담 한 마디 건네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한다.
공부를 하면서도 응시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느라 고민해야 한다.
모의고사도 준비해야 하고 내신을 위해 중간고사도 걱정이다.1학기 수시에 합격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동기 유발이 되지 않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은 계속된 긴장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상적인 경로를 거쳐서 얻는 것이 참되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아이들은 당연히 그러한 경로를 거쳐야 하겠지만, 지금 고3의 교실에서는 전혀 설득력 없는 말에 불과하다. 수업을 진행하다 잠깐 아이들을 둘러보니 교사로서 자존감마저 무너져 내린다.
몇 명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고, 또 몇 명은 수업과 관련 없는 책을 읽고 있고, 그리고 몇 명은 무기력하게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 수업 시간에 함께 호흡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는 많이보이지 않는다. 수업을 들어갔다 나온 어떤 선생님은 아무도 듣지 않지만 정말 자신의 연주를 알아주는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무대를 내려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자의 심정과 같다고 말한다. 고3 교실을 들여다 보며 '고등학교에서 교육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겪어야 할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겪어야 할 것들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고등학교 시기에 그것에만 열중하도록 하거나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삶을 너무나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입시에만 매달린 결과 자신이 본래 꿈꾸고 실현해야 할 이상과 가치는 무엇인지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대학 진학만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삶은 궁핍하게만 보인다.더운 여름이 지나 고3 교실에도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오고 있다. 1학기 수시 모집이 끝난 2학기 고3 교실 풍경은 혼란스럽고 황량하다. 정직한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잘 자라게 가꾸고 가을에는 잘 여문 곡식을 거두고 난 뒤의 가을 들판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기에 황량하지만은 않다. 지금 우리의 고3 교실에서도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처럼 풍성한 삶을 가꾸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