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휴가가 끝이 났다. 휴가의 절반은 게으름으로, 그 절반의 절반은 무기력으로, 그 절반의 절반은 무료함으로, 그 절반의 절반은 명상을 가장한 낮잠으로 보냈으니, 그야말로 휴가를 제대로(?) 보낸 것인지 나이가 들어도 시간을 관리하고 제 할 일을 알아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여름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그 이유 하나로 그냥 보내버린 무위의 시간을 위로해 보지만, 그래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나태와 무기력, 무료함에 지친 낮 시간과 달리 가끔 나가 걸어보는 공원에서의 저녁 산책은 그나마 생산적이고 활기차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원은 저녁 시간이면 살아 움직인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먹을 움켜쥐고 엉덩이에 힘을 준 중년 여인들의 다부진 뺑뺑이다. 그 여인들의 빠른 발놀림과 흠뻑 젖은 땀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종아리가 예쁜 소녀들의 명랑한 발걸음, 벤치를 차지하고 저녁의 활기를 관망하며 정담을 나누는 백발의 노인들. 공을 쫓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 여기저기 훌라후프, 줄넘기, 배드민턴, 자전거, 롤러 블레이드… 저녁은 생기로 넘치고 그 기운은 사람들을 감염시켜 공원 안의 사람들을 조금씩 들뜨고 가볍게 만든다. 나는 소녀들처럼 명랑하게, 다른 여인들처럼 다부지게 뺑뺑이를 돌지도 못하고 몇 바퀴 어슬렁거리다 이내 지쳐서는 농구대 근처에서 몇 번 팔을 들어올리거나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다가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한다.이제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고 충고를 해도 내 마음은 그 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으니, 그것도 이래저래 문제이다. 무엇보다 저녁 산책은 편안하고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얼마나 미덕인가? 하는 정도로 나는 나의 운동에 대한 심드렁함을 변명할 뿐이다. 저녁 공원에 나갑니다. / 경계심이 없는 공원에서는 / 헐렁한 바지와 낡은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 어둠과 침묵의 언저리에서 간디 선생을 생각하였습니다. / 선생은 이 저녁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 깡마른 조국과 조국의 뒷간과 / 말이 안 통하는 아내와 그녀의 계율을
오늘날 / 나는 / 선생처럼 위대해질 조국이 없어 위태합니다. / 대북지원, 신구갈등, 특검수사, 연가투쟁 / 이런 어려운 사자성어를 지워버리고 / 중년의 건강과 약수통의 안부와 선친의 기제사를 생각합니다.
저녁산책은 나들수록 구체적입니다 / 돌아오는 길이 홀로 붉어집니다.
이경후, <산책> 전문
이 시는 헐렁한 바지와 낡은 신발의 편안해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벼워지지 못하고 더 많은 일상의 것들에 메여 있는 한 중년의 산책을 보여 준다. 젊은 시절, 시대와 양심을 고민하던 투사는 어디로 가고 건강과 기제사와 그런 일상의 문제들 때문인지 아내와도 별로 편안해 보이지 않는 가장(家長)의 산책. 머릿속이 구체적으로 복잡한 저녁 산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디서 혼자 소주라도 한잔 한 모양인지 붉어진다(얼굴이?)는 시적 화자의 산책은 안타까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저녁 산책만이라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