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먹던 ‘밥’을 ‘법’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분명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먼저 왜 그러해야 하는지를 묻게 될 것이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었던 밥이 밥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대학수학능력 시험 응시 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귀가 나온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귀가 나온 사진을 부착해야 한다고 여름방학 중에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개학을 하고 학교 현장에서는 혼란이 일어났다. 갑작스런 교육부 지침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일었고 학생들에게 사진을 새로 촬영하도록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얼마 후 인터넷을 통해 재학생은 귀가 나오지 않은 사진도 허용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육청의 공식적인 확인이나 답변은 없었다. 논술 시험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와 대학 간 논술에 대한 논란으로 사회 전체는 갑자기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은 듯이 난리가 난 것 같았다. 곧바로 학교현장에서 논술교육을 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현장의 교사들이 논술교육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논술교육을 하라’고 윽박지르고만 있는 것 같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참 답답하다. 교육에 대한 많은 것을 결정하는 교육부나 교육청은 일방적 전달과 지시 위주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교육에 있어서 합리적 의사 소통과 논의를 통한 협의 과정이 생략된 채 곧바로 학교 현장에 지시를 내리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는 교사들을 비합리적, 비논리적, 비이성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육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수직적 사고 구조는 소통과 공감을 어렵게 하는 것 같다. 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목적과 방법이 존재한다면 교육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주체들의 다양한 목적과 방법이 존재하는 이상, 수직적 사고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수평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막힘이 없어 모두에게 잘 통하는 협의 과정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몽둥이 들고 윽박지르며 당위성만 강조한다고 해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억지로 하는 일에서는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일이라고 하지만,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인 것이다.
교육에 대한 중요한 일을 결정하여 실행하면서 교육의 주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면, 소통과 공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양산남부고등학교 교사 유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