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무대 조명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내비쳤다. 지난 9월 5일 경기도 평택에서의 연주에 이어 8일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연주회를 마치고 쉬지도 않고 5시간 이상을 달려와서 9일, 양산에서 연주한 다음날인 10일에는 곧바로 부산에서 공연을 하는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어찌 피곤하지 않으랴.그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피곤한 기색을 보면서 ‘행여 연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 공연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첫 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에서 마지막 23번[열정]까지 이어지는 연주를 감상하면서 필자의 생각이 부질없는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의 연주에는 베토벤의 강렬함과 쇼팽의 아름다움이 한껏 배어 나왔다. 과연 백건우답게 여유 있는 템포가 오히려 딱딱한 베토벤을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연주는 대가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의 순간, 순간이었다.악장과 악장사이에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는 작은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연주에 뜨겁게 호응하는 양산시민들의 감상 매너 또한 놀라웠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청중들은 박수를 너무 아낀다고 소문이 무성한데 양산시민들은 이런 평가를 완전히 뒤흔들어 버렸다. 드디어 마지막 작품이 끝난 순간, 누구라 할 것 없이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로 이 거장의 연주에 화답했다. 오랜 기립 박수 끝에 가벼운 앙코르곡으로 마무리를 하며, 이날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작은 지방도시라는 이유로 좋은 공연을 볼 기회가 그리 쉽지 않던 터에 이처럼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분 좋은 하루였다. 좋은 공연 섭외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 양산문화예술회관 관계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조태훈 / 인터넷 음악카페 ‘클래식음악감상실’(http://cafe.daum.net/classicmusic)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