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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눈 오는 나라의 시인
사회

눈 오는 나라의 시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9/15 00:00 수정 2005.09.15 00:00

친구가 중국엘 다녀왔다며 윤동주 시집 한권을 전해 주었다. 대학모를 쓴 윤동주의 사진 아래에 푸른색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는 그의 영원한 제목이 있고, 정광하 박용일 편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라고 박혀 있다.
표지를 넘기니 다시 윤동주의 사진 아래 ‘윤동주략력’이라고 하여 그의 생애가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인용한 산문과 시는 원문과 동일하게 옮긴다.)

1917년 12월 30일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지금은 룡정시에 귀속)에서 윤영석과 김용의 장남으로 태여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 평양숭실중학 등을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1941년)하기까지 그의 학교생활은 항상 활동적이었다. 일본에 건너가 도꾜립교대학 영문과에 입학(1942년)했으나 그해 가을 다시 도꾜동지사대학으로 편입, 학업과 시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길에 오르던중 항일민족 사상범 혐의로 일본형사에 검거되여 복역중에 옥사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28세였고 그날은 1945년 2월 16일이였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시인이 생전에 출간하다가 출간 못하고 두었던 시고를 수집정리하였다.

윤동주의 생애를 읽어가다 1945년 그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 <2월16일 동주사망. 시체를 가져가라.>를 읽을 때쯤이면 언제나 그렇듯이 눈물이 뻗쳐오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위독함을 알리는 전보-동주 위독하니 보석할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불연이면 규슈제대에다 해부용으로 제공함. 속답을 기다림-가 사망 전보보다 뒤늦게 도착한 사실이다.

내 마음은 여러 가지로 착잡하다. 꽃다운 자식을 시대와 민족에게 내어 준 그의 부친의 마음과 자신의 민족을 위해 시를 쓴 시인에게 <독립운동>이라는 죄명을 씌운 일본에 대한 분노, 그가 겪었을 고통과 공포와 분노와 안타까움과 그리움…

윤동주를 읽으면 나는 부끄럽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자주 ‘부끄러움’을 노래했지만 그의 부끄러움은 여전히 살아서 오늘날 많은 시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는 나보다 늙었지만 영원히 나보다 젊다. 그의 대표시로는 <서시>를 빼놓을 수 없지만,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즈음에 쓴 시 한편을 소개한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우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것일가, 정말 너는 잃어버린 력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덮여 따라 갈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나은 발자국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국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다. (1941. 3. 12)
-윤동주, <눈오는 지도> 전편

그의 나이 24세, 시대의 어둠을 노래하는 고민 많은 청년 동주에게도 순이는 있고, 순이로 인한 설렘과 안타까움, 그리움, 그 모든 젊은 감정이 있었으리라. 내가 이 시를 너무 가볍게 읽는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나는 이 시를 그렇게 읽고 싶다. 사랑하는 순이, 그 순이와의 이별로 인한 아픔을 노래하는 연애시로만 읽고 싶은 것이다. 그의 생애, 사철 눈 내리는 나라에 살았던 한 시인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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