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H 선생님은 고등학교 은사들이다. 두분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에 함께 우리 학교에 오셨다. K 선생님은 철학을, H 선생님은 문학을 가르치셨다. 두분은 열성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신임 교사의 진지함 때문인지 수업 시간에 오로지 교과목에 관한 얘기만 하셨다. 그 밖의 얘기는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는 덕담이든 가벼운 농담이든 전혀 하지 않으셨다. 수업 외의 시간에도 그분들의 개인적인 면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 학창 시절 두 분은 좋은 인상을 주었지만, 존경할만큼 잘 알지는 못하는 이들이었다.두 선생님을 좀더 알게 된 건 모교에 늦깎이로 교생실습을 가서였다. 세월의 연륜이 그들을 보다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들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적 교류의 기회가 많아져서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두 선생님은 학창 시절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예컨데, K 선생님은 내가 교생 실습을 마치기 며칠 전 편지를 하나 건네주셨는데, 따뜻함으로 가득찬 그 글의 말미엔 선생님이 펼쳐두고 나간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글을 읽어보라는 말씀도 있었다. 모니터에 띄워진 또 다른 긴 글에는 초임 교사 시절 당신의 모습, 실수와 반성, 겸손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글을 읽은 후, K 선생님을 비롯한 은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한결 마음 편하게 선생님들께 다가갈 수 있었다.H 선생님은 문학 교사이면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의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기자 일을 하던 시절, 어느 메이저 출판사 편집장과 유력신문 문화부 기자와 벌인 공개 논쟁에 매우 흥미를 있어 하셨고 또한 통쾌해 하셨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비슷하다는 걸 알고서 우리는 나이를 넘어 서로에게 친근감이 들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어느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짧은 글 하나로 수많은 네티즌의 가슴에 불을 질러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시민 모금을 성사시킨 이가 바로 K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고, 그의 제자라는 게 가슴 뿌듯했다. 공교롭게 H 선생님 역시 일간지 문화면에서 만나게 되었다. 신문엔 선생님이 일제 하의 독립군가들에 담긴 문학적 의미를 집대성한 책을 집필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내 은사들이다. 두 분이 언젠가 또다시 반가운 소식들을 들려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