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회

산유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9/30 00:00 수정 2005.09.30 00:00

"산유화(山有花)가 무슨 꽃이지?"
 "산에 있는 꽃이요."
"한자 뜻으로 읽으니 그렇구나. 그런데 사전 찾아보면 산유화는 '메나리의 한 가지'라고 되어 있어."
 "메나리는 뭔데요?"
"산에 자라는 나리꽃의 한 종류야. 나리꽃 닮은 원추리는 무리를 지어 길섶에도 피지만 나리꽃은 대개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높은 바위틈에 한 송이씩 피어 있어."
 "나리꽃은 여름에만 피잖아요?"
"여름방학 때 주로 피지."
 "그런데 왜 갈 봄 여름 없이 핀다고 했죠?"
"왜 그랬을까?"
 "…."

"아마 시인이 산에 갔다가 산유화(山有花)를 보고 이 시를 썼을 거야. 그러면서 산에 피는 모든 꽃에 산유화의 모습을 겹쳐 쓴 것이 아닐까? 답이 되나? 제목에 대해서는 이쯤 해 두고 손닿기 어려운 높은 바위 절벽 위에 한 송이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기품 있는 메나리꽃을 떠올리면서 산유화 한 번 읽어보자."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 山에 / 山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山有花)> 전문

 
"왜 봄 여름 갈(가을) 없이가 아니고 갈 봄 여름 없이일까?"
 "시인이 가을을 제일 좋아해서요. 가을에 꽃이 가장 다양하게 많이 피잖아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봄 여름 갈 없이로 하면 꽃이 겨울엔 거의 피지 않으니 꽃이 피는 것이 계속 순환되지 못하잖아. 그래서 겨울을 건너뛰는 갈 봄 여름 없이로 한 거야.

이렇게 하니 사물의 생성(태어남)이 끝없이 순환 반복되잖아. 山에 / 山에와 같이 행을 갈아 놓으니 산마다의 뜻에 산과 산이 겹쳐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살아나지?

그런데 내 대신 숨 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가 내 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죽고 못 사는 사람이라 해도 결국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거리를 뛰어 넘을 수 없어. 그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를 '저만치'라는 말로 형상화한 거야.

손닿을 수 없는 높은 바위 절벽 위에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기품 있는 나리꽃과 그 바위 절벽 아래 서 있는 나하고의 거리로. 이 거리는 꽃과 꽃, 꽃과 새와의 거리도 되지. 핀(생성, 태어남)것은 지게 되어 있어. 가을에도 꽃은 피고 지고, 봄, 여름에도 그렇지. 삶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 반복과 실존적 고독(뛰어넘을 수 없는 '저만치'의 거리)을 잘 형상화 한 시야."
 

한로(寒露) 앞둔 요즘 아침 산책길에 이슬이 잦다. 길가 풀숲엔 그냥 들국화라 불렀던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이 이슬에 젖어 더 깨끗하고 곱다. 쑥부쟁이는 연한 보라색으로, 산국은 노란색으로 무리를 지어 피어 있고 구절초는 뽀얀 흰색으로 대개 한 송이씩 홀로 피어 있다.

어머니 산소 오르는 길목 밭둑에 무리져 피었던 쑥부쟁이, 산자락 오르며 드문드문 한 송이씩 피었던 구절초 뽀얀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추석에 비 오락가락 했다고 산소도 들러보지 않고 왔다. 어떤 이는 시묘살이도 하던데.

어머니와 나 사이의 '저만치'가 너무 멀어졌다. 이 가을 가기 전에 아이들 데리고 어머니, 아버지 산소 한 번 찾아봐야겠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