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맞지 않은 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함이 많음이라. 내 이를 불쌍히 여기어 새로 스무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사용함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559년 전(1446년), 세종임금께서 이런 큰 뜻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이 바로 한글이다. 그러나 한글이 세상에 빛을 본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글 559돌의 나이테는 온갖 업신여김과 억누름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벌써 일곱 해째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뽑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가려냈는데, 이번에 뽑힌 '우리말지킴이' 가운데 어린 학생들이 끼어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바로 '살색'으로 써 오던 색깔 이름을 '살구색'으로 바꾸게 한 성남 이매중학교 2학년 김민하 학생과 초ㆍ중등 학생 여섯 명이 그들이다. 크레파스나 물감의 색깔 이름으로 학생들이 많이 써 왔던 '살색'이 '연주황'을 거쳐 '살구색'으로 바뀐 데에는 우리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사연이 숨어있다. 처음 '살색'을 둘러싼 다툼은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와 외국인노동자들이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크레파스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종차별"이라며 진정을 내면서 시작됐다.이런 김 목사의 지적은 각계의 관심을 모았고, 인권위는 이듬해 "한국산업규격(KS)에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한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며 기술표준원에 개정을 권고했다. 기술표준원은 이에 따라 2002년 11월부터 '살색' 대신 '연주황' 또는 '연한 노랑분홍'으로 바꿔 쓰기로 했다.그러나 앞에서 밝힌 어린 학생 6명이 지난해 8월 "어려운 한자어인 '연주황'을 사용하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연주황'을 '살구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이들 학생들은 김 목사의 딸(민하)을 비롯한 김 목사 형과 여동생의 딸들이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피해자를 '대한민국 어린이들', 차별행위 당사자를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살색을 연주황으로 고친 위원 및 담당자'라고 적었다. 기술표준원은 마침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연주황'을 '살구색'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이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른들이 그저 부끄럽고 민망할 뿐이다.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