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좋아졌다. 나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는 기운(?)이 있다고 자부하는 터인데, 그는 맑음과 멋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생활 때문에 복분자 술을 만드는 그는, 가슴에 한 동이가 넘는 시를 안고 출렁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조용히 그를 관망하면서, 그의 언어와 그의 시, 그의 언어가 가진 진실과 그 품격에 거의 익사할 지경이었다. 썩을… 지역감정이라니. 누가 만든 것이냐. 그 어이없는 단어를.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누가 다투어 반분에 또 반분을 하자는 것이냐. 쓸데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누르며, 나는 정읍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쁜 반달이었다. 땅에도 환하고 빛나는 반달이, 앞니 하나가 빠진 채 웃고 있었다. (이빨 해 넣고 내가 다음에 만나면 존나게 웃어버릴껴.) 그의 시를 한 편 옮긴다.
봄 빛깔 사무쳐 여름 들 무렵입니다
손 없는 좋은 날로 택했을른지요
한라산 중턱의 한 골짜기, 오래전 거기 깃들인
진박새 내외
내외는, 알토란같은 새끼 몇 마리
아직은 살점만 같은 비린 목숨 몇인가를
한사코 세상 속에 들켜내 놓았습니다.
암새는 둥지 안에서
새끼들 더불어 나오지 않고
숫새만 가지 위에 나와 사주 경계로 보초 서는데
그 모습일랑 사뭇 엄연하여
불현 듯 생의 퍼어런 서슬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그때 쯤 숫새 한 마리
깜냥을 다하여 몸서리치게 외쳐 대는데…
상황은 별반 달라질 일 없어
미끄러지듯 가지를 타고 다가온 배암 한 마리!
징그러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만 삐약거림만 남은 저 어린 살점 몇인가를
포식으로 지우고 사라져 갔습니다.
다시금 그때쯤 빈집을 버리고 날아간
진박새 내외, 아프게 머물다 간 잔 가지 위로
생의 퍼어런 파문 일렁입니다.
정윤천, <엄연함에 대하여> 전문
부인할 수 없는 이 상황, 진박새 내외의 이 엄연한 현실, 그러나 엄연히 살아갈 일이다.
이 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족(蛇足)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