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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정읍의 달
사회

정읍의 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0/07 00:00 수정 2005.10.07 00:00

정읍까지 가야 한다는 것의 부담은 지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면서 내내 '집이 멀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 시인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구, 진주, 거창군 가조…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의 이정표를 지나 정읍까지 가는 길은 멀고 아름다웠다.

가을 풍경처럼 아름다운 사람. 아니 풍경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직하다. 호남의 시인을 만난다는 것에 나는 많은 기대를 안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호남 방언의 예술성을 예찬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일행에게 물었더니, 그는 안타깝게도 호남 방언을 구사하지 않고 표준어에 가까운 말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는 내가 듣고 싶어 했던 호남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 경이로움이라니.

시인 정윤천.
나는 그가 좋아졌다. 나는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는 기운(?)이 있다고 자부하는 터인데, 그는 맑음과 멋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생활 때문에 복분자 술을 만드는 그는, 가슴에 한 동이가 넘는 시를 안고 출렁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조용히 그를 관망하면서, 그의 언어와 그의 시, 그의 언어가 가진 진실과 그 품격에 거의 익사할 지경이었다.

썩을… 지역감정이라니. 누가 만든 것이냐. 그 어이없는 단어를.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누가 다투어 반분에 또 반분을 하자는 것이냐. 쓸데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누르며, 나는 정읍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쁜 반달이었다.

땅에도 환하고 빛나는 반달이, 앞니 하나가 빠진 채 웃고 있었다. (이빨 해 넣고 내가 다음에 만나면 존나게 웃어버릴껴.) 그의 시를 한 편 옮긴다.
 
 봄 빛깔 사무쳐 여름 들 무렵입니다
 손 없는 좋은 날로 택했을른지요
 한라산 중턱의 한 골짜기, 오래전 거기 깃들인
 진박새 내외
 내외는, 알토란같은 새끼 몇 마리
 아직은 살점만 같은 비린 목숨 몇인가를
 한사코 세상 속에 들켜내 놓았습니다.
 암새는 둥지 안에서
 새끼들 더불어 나오지 않고
 숫새만 가지 위에 나와 사주 경계로 보초 서는데
 그 모습일랑 사뭇 엄연하여
 불현 듯 생의 퍼어런 서슬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그때 쯤 숫새 한 마리
 깜냥을 다하여 몸서리치게 외쳐 대는데…
 상황은 별반 달라질 일 없어
 미끄러지듯 가지를 타고 다가온 배암 한 마리!
 징그러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만 삐약거림만 남은 저 어린 살점 몇인가를
 포식으로 지우고 사라져 갔습니다.
 
 다시금 그때쯤 빈집을 버리고 날아간
 진박새 내외, 아프게 머물다 간 잔 가지 위로
 생의 퍼어런 파문 일렁입니다.
 
 정윤천, <엄연함에 대하여> 전문

 
 부인할 수 없는 이 상황, 진박새 내외의 이 엄연한 현실, 그러나 엄연히 살아갈 일이다.
 이 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족(蛇足)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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