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도 않은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또 한 편 나왔다. <너는 내 운명>도 그렇고 그런 멜로영화의 혐의를 벗기는 힘들다. 다방 레지와 시골 총각의 사랑이야기, 더군다나 여자는 에이즈 보균자라니 보지 않고도 '신파'라는 걸 알게 된다. 감독(박진표) 또한 자신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통속멜로'라 부른다. 하지만 <너는 내 운명>은 그 모든 우려와 혐의를 우직하게 헤쳐 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슬프다.신파이면서도 신파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 멜로영화를 만드는 모든 감독들의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인물보다 풍경에 초점을 맞추거나 팬시점 진열장에나 어울릴 법한 소품들을 등장시킨다. 현실에선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예쁜 대사들은 또 다른 돌파구다.<너는 내 운명>은 이 모든 방법을 떠나 진심어린 정공법을 선택한다. 즉 신파이기에 더욱 신파적이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아름다울 것 없는 농촌의 풍경들은 남녀 주인공의 뻑뻑한 현실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시작하는 사랑은 크게 울려 퍼진다. 사랑을 포장하지 않는 이 영화는 예쁜 대사 하나 없이 그저 "사랑해"라고 크게 외칠 뿐이다. 좋을 때도 "죽을 만큼 좋다"(이건 감독의 애교다!)고 말한다. 기교 없고 포장되지 않은 대사들에는 대신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감독의 우직한 정공법은 두 주연 배우의 명연기와 맞물려 더 큰 힘을 얻는다. 예쁜 척 하지 않고 다방 레지 역을 소화한 전도연은 그야말로 빛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순박한 시골 총각 '석중'을 연기한 황정민의 연기는 얼음마저 녹일 정도로 절절하다. 2005년 최고의 연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너는 내 운명>에서는 계산 없는 사랑의 모습, 그 궁극의 도달점을 잘 보여준다. '석중'과 '은하'가 도달점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에이즈,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는 둘의 모습에는 진정성이 가득하고 그렇기에 참을 수 없는 눈물과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면회실에서의 장면은 영화 내내 쌓아 온 감정의 둑이 무너지며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루게 한다. 힘센 멜로, 힘센 신파의 등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감독:박진표/출연:전도연, 황정민, 서주희, 윤제문, 류승수 / 상영시간:121분/18세 관람가
전건우/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