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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건강 100세
사회

건강 100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0/14 00:00 수정 2005.10.14 00:00

상갓집에 다녀왔다. 101세 노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식장에는 슬픔보다는 짐 하나를 벗었다는 듯한 느낌이 잔잔히 깔려 있는데 칠순은 넘긴 듯한 머리 허연 할머니 한 분이 울먹이며 들어왔다.

"고모 오셨어요." "그래, 조카구나. 어이구~ 이를 어째."

울음 한 보따리를 풀어내자 장례식장은 잠시 상갓집으로 바뀌었다. 죽음이라고 다 같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라 해서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죽음은 어떤 슬픔이라 불러야 할까.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의 <유리창(琉璃窓)1>전문
 
"시적화자가 언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지?"

"깊은 겨울밤에 홀로 유리를 닦고 있어요."

"왜 깊은 겨울밤에 시적화자는 자지 않고 일어나 유리를 닦을까요?"

"잠이 안 와서요."

"왜 잠이 안 올까?" "낮에 낮잠 실컷 잤겠죠."

"하하하하." 답하지 않던 녀석들이 웃어대자 대답하던 녀석도 덩달아 웃는다.

"대답한 너는 왜 웃는데?" "웃기는 답이잖아요."

"왜 웃기는데?" "1학년때 이 시 이미 배웠거든요. 어린 아들이 폐렴으로 죽어 그 슬픔 때문에 잠 못 자고 일어난 것인데 알면서 그렇게 대답했으니."

"하하하. 그래 좋다. 그러면 알고 있는 것 더 말해 봐라." "차고 슬픈 것,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山) 새는 죽은 아이의 영상을 나타내는 것이고요. 외로운 황홀한 심사에는 역설법이 쓰였어요."

"흠 좋구나. 그러면 유리에 서린 입김을 지우고 보고, 지우고 봐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는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밀려와 부딪치고 밀려나가고’가 아닐까? 방안에 이미 불을 켜고 있는데 밝은 방에서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는 것은 어울리지 않잖아." "......."

"어린 아들이 폐렴으로 죽었다고 했잖아? 그 슬픔 때문에 잠 못 들어 깊은 밤 일어나서 방 안에 불을 켜고 창가에 서서 유리창에 서리는 입김을 지우면서 새까만 겨울밤을 내다보고 있는 시적화자의 모습은 잘 떠오르지?" "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봐도 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아이가 죽은 사실을, 아이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노력을 나타내는 거야. 아이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고는 그 슬픔의 고통 때문에 살 수가 없어서, 그래서 억지로 지워서 잊어버리면 마음 가득 들어차 있던 새까만 밤과 같은 슬픔이 썰물처럼 밀려 나가는 거야.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렇게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 찾기 어렵지."
 
사람들은 윗자리에 오를수록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이 빨리 자리를 비켜주었으면 한다. 나는 윗자리에 오래 앉아 있고 싶으면서도 내 윗자리 사람은 빨리 자리를 비켜주었으면 하는 모순된 것이 또한 사람들 마음인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조금 모자란 것이 가장 잘 채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뜻대로 될까마는 조금 모자라 가까운 사람들이 아쉬워할 만큼, 그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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