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은행잎들 다시는 지지 않도록 / 다시는 풍경이 말하는 일이 없도록 / 밤 하늘을 가득 채운 숨은 별들이 다 드러나지 않도록/세상 모든 별들을 끝내 사람들이 다 보지 못하도록 / 담배 연기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제발, 불꽃이 사람 근처를 떠나지 않도록 / 한번 저지른 모진 죄를 언제까지나 용서하지 않도록/아무하고나 화해하지 않도록 /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찾을 수 없도록/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 수억 년 동안 시달려 온 저 지친 은행잎들 다시 지지 않도록 / 다시는 물들지 않도록, 다시는 수직낙하하지 않도록 / 그래도 지지 않을 수 없다면 새 잎으로 다시 피지 않도록 / 저들이 야합과 의리가 끝장나지 않도록 / 사람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 사람이 아닌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 설사 새로 태어난들 서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 옛날 옛날 그가 풍경 속에 숨긴 것을 사람들이 찾지 못하도록 / 정말 그가 무엇을 숨겨놓기나 한 것인지도 믿지 못하도록 / 갖은 풍문이 풍문일 뿐임을 깨닫지 못하도록 / 이 게임의 법칙을 되새기지 못하도록 / 이미 잠깬 이 도로 잠들지 않도록 / 아직도 자는 이 깨어날 필요 없도록 / 사랑의 빈틈이 다 채워지지 않도록 / 결코 사랑이 완성되지 않도록 / 그래서 사랑이 할 일을 잃지 않도록 / 저 은행 노란 잎들 새 아침까지 지지 않도록 / 어지간하면 새 아침은 오지 않도록 / 지금 듣는 네 웃음소리, 또는 저 은행잎들 오늘처럼 찬연하도록
이희중, <이 가을 이후> 전편
은행나무 잎사귀에 고정된 화자의 시선은 '-않도록'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을 수다스러울 만치 장황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자기 삶에 대한 다짐이며, 이 아름다운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이 상태대로 모든 것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대로,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수다스러운 진술은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 때문이라는 것은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화자는 "사랑의 빈틈이 다 채워지지 않도록, 결코 사랑이 완성되지 않도록, 그래서 사랑이 할 일을 잃지 않도록"이라고 노래하면서도, 결국엔 노란 은행잎처럼 어여쁜 네 웃음소리가 언제까지나 찬연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냄으로써 사랑의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감정적 모순을 드러낸다. 이것을 시의 논리적 파탄이라고 한다면 나의 편협함일 것이다. 이 가을 이후에도 사랑은 사랑의 빈틈이 없기를 바라는 연인들의 빈틈 사이에서 생겨나고 이루어지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