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피하기 위해 선수를 치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 학교 절반 가량의 선생님은 내게 교사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출중한 분들이셨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개봉되었을 때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많은 불운한 청소년들이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선생님’이라 여긴 것과 달리, 나는 영화 속 키팅 선생을 이미 현실에서 만나고 있다고 믿었다. 그곳의 ‘키팅’ 선생들 대부분은 굳건한 전교조 지지자들이었다. 특히, 가장 훌륭한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은사는 부산 전교조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던 분이었다.제한된 지면 탓에 보호막은 이 정도로만 쳐두고 이제 전교조를 씹어 보자. 최근 교육부는 2008년부터 영어, 수학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반을 나누는 방법부터 교재, 평가 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전교조는 기민하게 반대 방침을 발표했다. 나는 전교조의 발빠른 대응이 적지 않게 실망스러웠다.밝혀두자면, 영어교사로서 나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수준별 수업이 모든 면에서 효과적이고 장점만 가진다고 보지는 않지만, 득실을 차분히 견주어 보았을 때 도입하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가 전교조에 실망한 이유는 그 단체의 반대 입장 자체에 있지 않다.나는 그 단체의 입장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결론이 ‘틀렸다’고 주장할 만큼 독단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단체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이며 왜 반대 입장을 내놓는지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른바 전교조 성향의 교사들 사이에 수준별 수업에 대한 반대 입장이 다수이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에 있어 전교조의 무엇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인가?지방의 시골 학교에 근무하는 탓인지, 나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포함한 여러 교육정책에 있어 전교조가 현장의 교사들로부터 어떻게 논의를 이끌어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이루어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중앙 집행부의 견해가 아래로 전해지면 그러한 입장이 각 지역과 학교로 일사불란하게 전파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학생운동권 수준의 논의 구조를 못 벗어나는 듯 하다. 아직도 전교조는 불법교원단체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수준의 의사소통 방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과거 전교조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이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식의 권위주의적 학교 운영을 비판했었다. 이제 거꾸로, 교원단체로서의 전교조가 과연 얼마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갖고 있는지 성찰해 볼 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