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들어 우리 작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련한 '가족과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하였다. 두 행사 다 아빠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로부터 참석 통보를 받고는 마치 예비군 훈련 통지서나 민방위 훈련 통지서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거기다 아이들은 이렇게 다짐을 한다."아빠, 선생님이 꼭 와야 된다고 했어요. 가는 거 맞죠?" 곧장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아내가 눈짓을 한다. 잠깐 동안이라도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응, 당연히 가야지."하고 큰 소리를 쳤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 날 어떤 피치 못할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아무튼 약속한 날 모두 아무런 일이 없어 무사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와 아이들이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들의 배려가 참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학부모와 아이들이 학교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일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가 전부인 것 같다. 중ㆍ고등학교에서도 소풍, 체육대회, 축제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학부모와 함께 하는 행사는 드물다. 중ㆍ고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경우를 보면, 대개는 성적이나 진학 문제 또는 생활지도와 관련한 상담을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에게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병원이나 경찰서를 가는 일처럼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질 수 있는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워진다는 것을 절감할수록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 서로가 그 어떤 일에서건 이해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일이 필요하다. 그건 함께 하는 일이다.언젠가 학부모님들께 이런 도발적인 제안을 해 본 적이 있다. "솔직히 저는 담임이라고 하지만, 30명이 넘는 반 아이들 각자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해도 아이들 각자가 처한 구체적 삶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학교 안에서는 꽉 짜여진 일과 속에서 생활을 하니 아이들 각자의 구체적 삶이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율학습 시간에라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는 자율학습만이라도 제가 아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책이라도 좋으니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에라도 책을 읽으셔서 아이가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오늘날 교육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려면 교육의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ㆍ공간이 만들어내는 삶의 다양한 조건과 상황 속에서 이것이 이루어지기란 참 어렵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해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과 교사나 학부모가 겪어야 할 갈등이 부정적인 대립으로만 남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발휘해 서로의 구체적 삶을 이해하면서 공감하고 갈등을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유병준 교사/ 남부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