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천성산 기슭
두메 산촌에서 살았던 나는
한 번도 바다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천성산에 올랐다
동쪽 바라보면 대운산 눈앞이 보이고
대운산 위에 쪽빛 바다가 엉겨 있었다
점점이 떠 있는 유조선, 어선들의 희미한 모습 없었다면
바다라고 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시간 내가 그릴 수 있었던 바다는
화폭 맨 위에 하늘을 그려 넣고
하늘밑에 바다, 바다아래 대운산
대운산 기슭에 황금 들판과 회야강
회야강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을 그렸다
대운산 위에는 장생포 바다에 귀신고래가
물을 뿜어 올리는 모습을 그려 놓으면 사람들은
비행기가 꼬리에 연기를 물고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했다
해파리 떠다니는 모습은 우주선이라 했고
불가사리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문어가 헤엄치고 다니는 모습은 우주인이 대운산에 내려오는 모습
산토끼를 그려 놓은 걸 보고 사람들은
용궁구경을 가는 간 빼놓은 토끼라 했다
대운산 기슭에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은
처용부모님 사시는 용궁이라 했다
유년시절 내가 그렸던 바다는
앞으로 다가올 제5간빙기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는
환락의 대륙 아틀란티스를 삼킨 바다였다